『명절 때마다 총독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가 있었다. 마침 그때에 반란을 일으키다가 사람을 죽이고 감옥에 갇혀 있던 폭도들 가운데 바라빠라는 사람이 있었다.
군중은 빌라도에게 몰려가서 전례 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달라고 요구하였다. 빌라도가 그들에게「유다인의 왕을 놓아 달라는 말이냐」하고 물었다. 그때 빌라도는 대사제들이 예수를 시기한 나머지 자기에게까지 끌고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빌라도의 말을 들은 대사제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빌라도가「도대체 이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하고 물으니 사람들은 더 악을 써 가며「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쳤다. 그래서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놓아주고 그 대신 예수를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내어 주었다』(마르 15, 6∼15).
『요셉 신부님! 저를 아시겠습니까? 성령기도회에 다니던 세실리아 엄마 아녜스입니다.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실례를 무릅쓰고 두서없는 글을 올립니다』. 기억을 되찾아 15년 전 본당 신부로 있을 때 레지오 단원임을 알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 신부님! 의지도 약하고 믿음이 부족한 제가 서울로 이사온 후로는 오히려 마음 편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복사하던 베드로는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했고 둘째 개구쟁이 바오로는 대신학교 3학년, 셋째 세실리아는 고 3인데 대학을 졸업하고 수녀님이 된다고 열심히 성당에서 성가 반주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교 교수님의 도움으로 영어학원 강사가 되어 피곤하지만 세 아이 바라보는 낙으로 열심히 잘 살고 있습니다.
왜 이사를 했느냐고요? 신부님이 병자성사와 봉성체를 모셔 드렸던 세실리아 아빠(남편 그레고리오)가 신부님이 다른 성당으로 떠나신 후 두 달 만에 선종했습니다. 경황이 없어 연락도 못 드리고 교구 공원묘원에 모신 후 찾아 뵙는다고 하다가 제가 성의가 없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할 수 없이 고향 성당을 떠나 왔지만 지금은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분명 주님께서 크게 도와 주셨음을 믿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수도자인가?…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주로 검은색 옷을 입고 1백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검은 계통의 옷을 입는 것을 생전의 남편이 좋아했기에 남편을 생각해서 입고 다녔지 별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구역 교우들과 레지오 단원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자기가 수도자인가? 검은 옷만 입고 다니게!」견진 대모님이 귀뜸을 해줘서 뒤늦게 알게 된 후 마음이 편치를 못했습니다.
성당만 다니면 뭐 나오나? 살 생각을 해야지.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으로 하늘이 무너진 듯(?)한 충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과 고인의 영혼을 위해 성당 성모님 상 앞에서의 기도와 매일미사 참례는 내 생활의 전부였고 위안이기도 했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성당에 다녀와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오전에는 10시 미사, 오후에는 산소를 다녀오는 일이 일과처럼 되었었습니다.
살아있을 때 잘 해주지. 제 나름대로는 신앙 가정을 이루며 남편과도 단란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산소만 다니면 열녀인가? 애 셋은 팽개치고…」. 서둘러 다녀오면 오후 서너 시면 집에 돌아오곤 했는데….
대모님이 자세하게는 말씀 안 하셨지만 반 기도 모임이나 레지오 쁘레시디움 등 제가 없는 자리에선 말이 꽤 많았던 모양입니다. 열녀가 났다고.
어-휴 무서운 여자야! 돈 밖에 모르는…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살림이 막막했습니다. 천만다행히 작은 집이지만 내 집이 있고 얼마간의 저축과 퇴직금으로 당분간은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세 자녀의 학비는 물론 앞으로 살아갈 길이 큰 걱정이었습니다. 결혼 후 집에서 살림만 했으니….
마음도 달랠 겸 위안이 될까 해서 고등학교 때 친구(천주교 교우)가 하는 꽃집에 가서 일을 도와줄 겸 어느 정도 도움이 될까 해서 다녔더니 그게 또 화제 거리였던 모양입니다.
1백일만 지나면 저래도 되남? 집에만 마냥 있을 수 없어 꽃집에 다니면서 틈틈이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나 하고 이곳저곳 좀 돌아다녔더니 들려오는 이야기는 점점 엉뚱한 소리만 들려와 처음에 한두 번은 그러거나 말거나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당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성모님 상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본당 수녀님을 찾아가 의논을 해 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가까웠던 구역 교우들의 이상한 눈초리와 수근거리는 소리를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님만은 저의 딱한 처지를 아시겠지 하면서 믿음이 약한 저로서는 정든 고향 성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교우들을 피한 것이 성당과 주님을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염려해 주시옵니까?』(시편 144, 3) 서울로 이사온 후로 집값이 오르고 힘은 들지만 전공을 살려 직장도 얻게 되었음은 물론이요,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신앙적으로 구김없이 잘 자라 지금은 자기 몫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기에 그저 주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처음 이사온 후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모님과 주님께서 하루하루를 이처럼 보살펴 주셨고 지켜 주셨습니다. (편지 내용은 본인의 양해를 얻어 인용하여 게재함.)
얼마나 많은 모순 투성이의 견해와 판단이 내 안에, 우리 주위에 많습니까? 이 세상 종말까지 빌라도 총독의 책임 회피성 오판은 없으리라고 봅니다. 체면과 권세, 욕망과 나만의 교만, 대수롭지 않게 습관적으로 가볍게 내뱉듯 하는 무성의함과 오만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로 인해 상처 받고 괴로워했는지를 성찰하며 성주간을 맞이하지 않으시렵니까?
주님!『내 입술로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옵소서』(시편 119, 171). 마음 안에 빌라도와 같은 가볍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이 없게 하여 주옵소서.
『판단하는 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마태 7, 2) 하신 주님! 다른 사람에게는 인색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후하고 너그러운 습관이 있다면 이것부터 바꾸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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