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 협상 타결로 농촌의 터전이 완전 상실될 위기에 처했을 때 전 교회 구성원이 힘을 합쳐 탄생시킨 우리농촌살리기운동.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지난 94년 6월에 우리농촌살리기 운동본부가 창립됐을 당시만 해도 우리농 본부에는 재원도 없었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인력도 부족했다.
물론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해 항상 미지급금을 남겨 두어야 했을 정도로 우리농 본부의 제반 여건이 미비했지만 오직 죽어가는 농촌을 위해 뭔가 자신의 역할을 찾자며 우리농운동에 뛰어든 젊은 평신도가 있다.
『우선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로 하고 우리농 본부에서 일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농촌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기반을 잃은 우리 농촌에, 또 용기와 희망이 꺾인 농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농촌살리운동 전국본부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영범(아우구스티노·33·수원 매교동본당)씨가 우리농운동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서울대 농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실천적인 농업연구」를 표방하고 있는「서울대 농업정책연구회」에 가입한 것이 계기가 됏다.
『다른 직장을 찾아갈 수도 있었지만 농민운동이나 농업 관련 단체로 진출, 살아있는 현장농업, 실천농업을 부르짖어 왔던 자신을 속일 수 없었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사무차장도 겸하고 있는 박영범씨는 처음엔 영세도 하지 않은 비신자였지만 우리농운동과 함께 교리를 익혀 지난해 말 김승오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특히 박영범씨는 우리농운동 초창기 시절, 어떻게 우리농운동이 나아가야 할지 방향은 정해져 있었으나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어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었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박영범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통한 도농간의 결연,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농업 육성 등 하나둘씩 결실을 맺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직도 월급을 다 받지 못해 미지급금을 남겨둘 정도로 어려운 살림이지만 뚜렷하게 재원 조달할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아쉬운 점이라는 박영범씨는 앞으로 우리농 상표가 등록돼 우리농 상표 사용료를 생산자들로부터 받게 되면 어느 정도 숨통은 트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부인에게 내밀기가 민망할 정도로 얇고 날짜가 일정하지 않은 월급이지만『그래도 가슴으로 이해해 주는 애기 엄마가 있어 우리농운동에 별 분심없이 일할 수 있다』는 박영범씨.
『한 점을 돌파하자』라는 평소 소신처럼 박영범씨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서울 각 본당 소비자들과 경기도 안성 고삼농협 생산자들간에 맺어진 도농간의 결연운동을 한 점의 사례로 인식, 이런 사례들을 점차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