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3월 19일 제2단계 민족화해학교를 개교했다. 최창무 주교의 강의를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오후 7시마다 개설하는 민족화해학교는 앞으로 15주간에 걸쳐 23개 강좌로 마련된다. 본보는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적, 처방적, 구체적 지식의 습득을 목표로 마련되는 화해학교 전 강좌를 제1단계 강의에 이어 독자들에게 지상중계 한다.
왜 교회가 사회문제를 거론하고 정치에 관여하느냐 하는 반문들이 많습니다만 그것은 교회가 교회이기 위해서, 또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해야만 사람이 되고 사람 구실을 하면서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살지 않을 때 살아있는 교회는 아닐 것이며 교회가 교회의 활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교회일 것입니다. 사회문제 정치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사회 안에서 생활하고 그 정치체제 안에서 사는 모든 사람은 그 사회와 그 정치체제에 대해서 관계가 있는 것이며 책임 있는 것입니다. 단지 각자는 그 신분과 처지에 따라서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특히 교회는 늘 스스로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야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도피하고픈 마음이 생길 때에는 강생의 신비를 생각해야 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해야 되는 그 사명, 십자가와 고난을 과감하게 끌어안는 그러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에 영합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화해와 일치의 길을 열어 주시고 평화의 길을 가르치시고 몸소 그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인류의 역사 안에 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이며 동시에 그분의 길을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항상 박해가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올바른 일을 할 용기가 나시거든 이웃에게 힘이 되어 주십시요. 그 마음을 전달하면 혼자가 아니라 둘이 됩니다. 그러한 포부를 가지고 하십시요.
바로 우리는 수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죄의 용서를 주셨습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자기도 용서받을 뿐 아니라 이웃에게까지 용서의 은혜를 끌어내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봉사자들로 태어나야 합니다.
초기 공동체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또 전수해 주며 서로가 도와주며 빵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듯이 우리 교우들도 모이면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우리에게 원하시는지 가르쳐 주는 교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 도와 주어야 됩니다. 빵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의 표지입니다. 우리가 국수나누기운동을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기도없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2백년 전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강학회를 하고 더 잘 알기 위해 북경을 갔고 영세를 하고 돌아와 예수님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과정에서 명예와 재산을 다 빼앗기고 생명을 빼앗기면서 더 번져 나갔습니다.
1984년 여의도 광장에서는 그분들이 수치스럽게 죽어갔던 새남터와 절두산을 바라보며 만방에 그들이 왔다는 것을 시성식을 통해 선포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교회가 사는 이 세상은 어느 시대보다도 화해와 일치가 요청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민족은 분열되고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고 모략과 협박을 비롯 더욱 새롭게 자유를 빼앗기고 일치를 방해 받고 있습니다.
남북 정부가 모두 경직된 체제에만 급급합니다. 우리는 체제를 위해 있지 않습니다. 기득권자들은 여간해선 내어놓지 않습니다. 기득권을 빼앗는다 생각하니까 전부 적이 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반성해야 될 것은 우리 민족의 집단이기주의와 체제만이 아닙니다. 체제는 우리들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집단 이기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가 팽배해 있고 연대성 의식이 희박합니다.
소위 주체사상이라고 얘기했던 사람은 굶어 죽게 되었고 폐쇄주의로 치닫고 있습니다. 자유를 누린다는 사람들은 소시민적이고 자유자본주의에 물들어서 개인의 이익과 안일만을 돌보고 있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죄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종교인도 크게 봐서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진리와 자유의 추구보다는 역시 종교인들도 자기 종파에 급급하고 안일한 현실에 만족하고자 합니다.
종교인이 절반이 넘는 우리 남한도 종교의 이념대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세상의 변화는 제도의 개혁에서 오지 않습니다. 제도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통해서 옵니다. 제도는 문자입니다. 우리 노동법이 나빠서 안 됩니까. 있는 노동법이라도 다 지킨다면 전혀 새로운 사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는 국민의 절반이 넘는 종교인들이 가식과 위선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민족애와 국가관에 의거하여 봉사하고 희생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불교인들은 부처가 되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가 돼 보십시요. 종교인들이 자기 종교에 더 취해 보십시요. 남을 탓하기 전에 진정한 종교인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정말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분들이 평화와 일치를 이루는 추진위원들이 돼 주시고 영광스런 그리스도인들이 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함께 손에 손을 잡고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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