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결산하는 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도와 극기가 부족해서, 십자가의 길에 참석을 못해서,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사순절을 거룩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주로 소위 인간의 종교적 측면에만 관심을 기울여온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에 젖은 신자들에게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사순절동안 여느 때보다 더 큰 열성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에 전념해야하고(전례헌장109), 십자가의 길을 통해 그리스도의 수난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회상하며 묵상하는 것도, 죄악의 생활에서 이탈하는 것도 해야 할 일이다.
그리스도교신앙에는 이런 영적인 측면도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인간의 영적인 면뿐 아니라 생의 모든 국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모든 것을 포함한다. 신앙은 현대생활이 가지는 광대한 생의 영역전체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일상생활안의 현실이라는 터전에서 다져지지 않으면 그것은 진실된 것도 현실적인 것도 아니다.
사순절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나머지 우리도 그 아들의 영광, 곧 그의 수난과 부활에 참여하도록 하신 그 부르심에 우리가 세례라는 단 한번의 결정적 행위로 응답한 것을 회상하는 때이고, 세례로써 받아드릴 의무를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때이나. 세례를 통해서 신자는 하느님 앞에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그는 신앙으로 하느님의 실재를 파악하고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확신함으로써 신뢰를 가진다 그런데 신앙은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파악하고 확신하지만 그 임재는 감추어진 임재이다. 세상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안 계신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서 신앙을 공격하지만, 신앙은 이 공격에 견딜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이세상안에 감추어져있는 하느님의 임재에 신뢰를 가진다는 것은 비자명적이고 모험적인 것이다. 신자는 이 신앙의 모험 안에서 현실생활에 대처해 나가야한다.
사순절의 주요 테마의 하나인 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음을 품고 있고」(창8ㆍ21)악에로의 결향은 인간의 본성에 속해있고 실제로 악을 저지른다.
이웃을 희생시켜 자신을 부하게 하고 남을 착취하고 선의의 사람들을 속이고 남의 궁핍을 이용하고 스스로 세운 권리를 강요하고 짊어져야할 미래의 책임을 이기적으로 회피하고 가정에 불충실하고 결혼의 신의를 저버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육하다시피 하는 것 등으로 인간은 생명을 꽃 피우는 데에 봉사하기보다 생명을 파괴하고 그로써 죽음에 봉사하고 있다.
죄는 바로 이웃과 하느님으로부터의 인간의 고립이다. 인간은 죄에 대해서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고 인간의 약함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가망 없는 존재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들에게 약속된 용서를 함께 말하지 않고는 죄책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성서의 첫머리에 있는 것처럼 하느님으로부터의 구원약속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러니까 성성ㆍ속죄ㆍ구원은 인간의 능력이나 선업의 공덕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애련히 여기시는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다.
이같이 죄는 한편으로는 인간의 무력을 나타내고 다른 편으로는 죄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의 크심을 나타낸다. 인간의 죄악은 그리스도 안에서「복된 죄」가 된다.
성 아우구스띠노는 감히『참으로 필요 했네 아담이 지은 죄 너로써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라고까지 해서 이 말은 부활축일 전야제의 전례에 도입되었다.
그래서 부활축제는 한없는 기쁨을 가져다주고 크리스찬들로 하여금 생명을 꽃피우는 봉사에로 돌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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