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곳에 간지 한 10일쯤 되었을까 본래 있던 욕창과 매독환자 외 다시 2명의 욕창환자를 받았다. (욕창이란 오랫동안 누워있어 몸과 방바닥과의 자극으로 생긴 상처다)
한사람은 남자환자로서 욕창으로 등뼈가 환히 들여다보이며 또 궁둥이의 커다란 상처 2개엔 세수수건 3개로 상처를 틀어막은 채 실려져왔다.
아무리 깨끗이 식염수로 닦아내고 또 깨끗이 해주어도 이미 때는 늦어 사정없이 쏟아지는 농.
나무토막처럼 꼼짝 못하는 벌거숭이를 이리저리 굴리며 치료해주는 난 도저히 그들이 인간이라고 믿기가 힘들 정도로 너무나 처참하기만 했다.
거즈를 하루 3번씩 갈아주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이불은 온통 고름에 젖고 방바닥에까지 흥건히 고여 있는 것이다.
지렁이처럼 길게 상해서 나오는 혈관, 그래도 정신만은 맑아서 파란 많았던 인생의 한스럼움을 이야기한다.
나는 치료를 해주면서도 계속 마음속으로 외쳤다.
『주여 너무합니다. 너무도 비참합니다.』라고….
성당엘가도 내 귀엔 신음소리뿐이요 식탁에 앉아도 밤 냄새 대신 그 환자의 상처냄새 뿐이다.
때로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의 고통을 생각할 때 난모든 것을 잊고 만다.
그리고 우리 신부님께선 그 당시 또 다른 가난한 자들을 구출하기위해 얼마나 큰 위기에 놓여계셨던가.
어느 날엔 깡패들한테 붙잡혀 큰 위험을 당하실번 하시고 자기들을 구해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군중들처럼 우리 신부님께선 그때 온갖 박해와 정의에 굶주리고 계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모든 고통이 지금의 더 많은 양떼들을 우리에게 맡기시기 위해 주께서 우리를 단련시키시고 더 큰 주님의 포도밭을 주시기 위한 시험이었음을 이제 서야 깨닫게 된다.
그 후 약3천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맡기시지 않았던가? 이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의 최후가 바로 그때의 구호소사람들과 같지 않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욕창으로 온몸이 썩어가는 상처는 결핵만큼 낫지 않았다.
더구나 폐결핵에다 욕창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꺼즈만으론 안될 것 같아 커다란 뭉치 솜을 사다가 등과 바닥과의 딱딱한 자극을 피하고 스폰지에 구멍을 내어 깔아주고 온갖 방법으로 그들의 상처를 건조하게 하려고 했지만 온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그는 다만『감사합니다』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기어이 하늘나라로 가고야 말았다.
또 한명은 30살 남짓한 아주머니다. 멀리 남해에서 부산에 식모로 돈벌이 왔다가 첫날 여관방에서 연탄가스를 먹은 데다 방바닥이 너무 뜨거워 등과 궁둥이에 화상을 입은 것이 상처가 더욱 심해져서 5일만에 임종했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남해 남해』라고만 소리칠 뿐 주소도 알려주지 못한 채 가버렸다.
그들 중 가정이 있고 연고자가 있는 자는 소식을 알리지만 가족이 찾아오는 것을 보기는 극히 드물었다.
어떤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3사람이나 주민등록 주소를 보고 또 한사람은 살았을 때 적어놓은 주소로 임종의 소식을 보냈다.
이때나 저때나 연고자를 기다려도 오지 않아할 수 없이 그냥 장례를 치러줄 수밖에 없었는데 저녁 8시쯤 연고자 한분이 찾아왔다.
『김철희라는 사람 죽었습니까, 살았습니까』
『글쎄 왜 이제 오셨어요.』
『연락받고 바로 온 것이 이렇습니다.』
『모르겠어요. 지금 시체실엔 관 3개가 있어요』
『얼굴만보고 갈렵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만 해보고 간다는 것이다.
그때 같이 계시던 수녀님은 본원에 급한 볼일로 가시고 경비아저씨와 시체실에 들어가니 갑자기 전구가 터져 아저씨와 같이 관을 들고 나와 관 뚜껑을 다시 열어보는 순간 그땐 왜 그렇듯 무서웠는지.
추리소설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시체가 벌떡 일어날 것만 같이 머리끝이 섬칫하고 진땀이 났다. 아저씨는 결핵이라도 옮을 새라 관 뚜껑을 열어 젖힌채 도망친다.
몹시 무서웠지만 그래도 환자들 앞에선 그런 기색을 감추고 어머니다운 사랑으로 들과 같이 냉한 그들의 마음을 녹이려고 내 딴에는 무척 고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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