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순절을 통해서 육신의 본능을 절제하고 재들 지키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단련한다는 것은 하나의 훈련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게 하고 사명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과 자신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께서『지금 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두는 자들입니다』라고 말씀하셨읍니다 (필립비3ㆍ18-19)
인간이 자기 뱃속을 하느님으로 모시고 살 때 무서운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장 보편적인 진리도 손쉽게 무시해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양심에 대한 기준도 주관적으로 인위적으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한번 비뚤어진 양심에 합리화 작업을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환경이 사람을 어느 정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겪은 체험이 인생관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환경과 경험이 인간을 변화시키는 작업에서 진리와 보편성을 외면하게 되는 경우는 근본적인 자세에 그 문제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오늘 우리 주면에 어두운 현실이 있다면 바로 이와 같은 인간의 근본문제들을 도외시하고 외적인 번영과 발전이 마치 인간의 행복이나 인생의 목적처럼 착각하고 있는 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가치관의 변화가 제도나 억압에 의해 결정 지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순간의 안일과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부의의 세계로 자신을 맡기는 것처럼 수치스런 일도 없을 범한데…
그럴듯한 형식 논리로 하느님을 부르짖고 교회관을 찾지만 어딘가 그늘져 보이는 어색한 행동거지처럼 비굴한 자세는 없어 보입니다. 복음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한다는 목표 아래여기저기서 교회의 일치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르짖음에 기만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또는 현실을 바라보는「견해차이」가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참다운 인간성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진정한 회개를 통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순절은 분명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이 걸어가실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귀의 묘한 책략을 여지없이 몰아 낼 수 있었던 예수님의 지혜는 단식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확고하게 간직한데서 그 승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로 돌린 자세에서 예수님의 인성의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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