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잘해라, 착한 사람이 되어라,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이런 말들은 우리 어린이들이 늘 듣는 말이지만 이런 말들만큼 어린이들을 내리누르고 신경질 나게 하는 말은 없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게 되는 건지 어떻게 되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건지 통 알지를 못하면서 그 명령은 절대적으로 옮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이 당연한 이념을 목표로 일생이라는 항해를 하면 다소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기 나름대로 공부를 하고 자기 나름대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회에서 자기가 할 일을 찾기 때문이다. 우리 신자들에게도 늘 무겁게 느껴지는 무슨 부담감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은 면하고 천당엘 가야한다는 큰 숙제 같은 것이다. 이 통속적인 관념을 신학적으로 풀이해서『거룩한 자』되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그와는 반대로 하루의 일기를 쓰며 아무리 뒤져봐도 나의 생활에서 거룩한 자국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
잘못 투성이의 하루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거룩한 자』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겐 지상명령이며 죽고 사는 문제이다.
그러니 예수께 와서 이 고민을 틀어놓던 부자청년처럼『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겠읍니까?』하고 물을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우선 네가 알고 있는 계명을 지키라는 기본적인 것을 일깨워 주셨지만 우리가 요즘에 교회나 성당에 가서 이 답을 들을라치면 말끝마다 가난한자를 도와야한다고 한다. 그것만이 영생을 얻는 방법인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난한사람을 돕는 건지 알 수도 없다.
가난한 사람을 도우려면 우선 부자이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남을 도우라고 외치는 교회를 봐도 이 방면에 별로 배울만한 좋은 모범을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누구나 다 가난하고 누구나 다 부자라고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모두가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진지한태도와 노력이 긴요할 따름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보면 손수레 위에 연탄불을 피워놓고 무엇인가를 끓여 지나는 사람들에게 국한공기를 팔아서 몇 푼을 버느라고 밤새껏 골목을 지켰다가 집으로 돌아가느라고 남자는 끌고 여자는 뒤에서 미는 막벌이 부부를 보는 수가 있다. 머리가 숙여진다. 성스럽게 거룩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저희들의 생명과 어린것들의 생명을 이으려고 애쓰는 제1차적인 사명을 다하는 숭고한 모습이다.
구명가게를 지키는 장사꾼들, 자기직무에 충실하려고 일찍 나가 늦게 들어오는 봉급자들, 한마디로 사회의 기능을 각자 자기자리에서 제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 모두 거룩한 측면을 엿볼 수 있다.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우선 이러한 기본적인 것에 충실해야 할 줄로 안다. 그리고 나서 남을 도와주는 일은 더 잘하는 일이다. 계명을 다 지켰으면 네가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보통사람은 어려운 일이다. 완덕을 지향하는 사람이 할 수 있다.
영웅적인 행위이다. 그 이전에 먼저해야할 것으로 예수님이 제시한 기본적인 계명 등은 신명기(5장16-17절)와 레위기(19장1~2절ㆍ11~18)를 인용하신 계명으로 그것은 하느님이 당신백성들에게 그 사회에서 할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하게 되는 방법이었다.
오늘날 삶에 대한 숭고한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사회적 직능에 충실하지만 그 노력도 가층층이 다른 것처럼 하느님의 기본적 계명을 지키는데도 층층이 달라서 잘 안되는 수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속공로로 은총을 매양 받는 신약시대에는 죄가 있어서 덕이 없어서 영적인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이 없는 것이 큰 문제일 뿐이다.
늘 잘못하기만 하는 어린이들이 어버이의 따뜻한 손길 밑에서 안심하고 자라는 것과 같다.
제 잘못이 있으면서도 부모님은 결국 용서하신다는 믿음과 순진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겸허하고 순진한 믿음이 있으면 거룩한 자들이 가는 길에 들어선 것인다.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은 면 누구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러한 뜻이 아닐지 모를 일이다.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지상명령이다.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하여 기를 쓰면서 노력해야한다. 도토리가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러나 진지하게 노력하면 그 어느 나무보다도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만한 겸손한 수용성이 필요할 것이다.
사순절은 겸손을 되씹는 시기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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