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노상 찌푸린 얼굴의 시절만은 아니다. 고통과 기쁨의 리듬을 타는 교차적 인생에서 고통이 강조되는 시절일 뿐이다. 통회가 강조된 만큼 기쁨도 강력히 나타나는 때이다. 그 기쁨은 물론구원(救援)의 기쁨이다. 그래서 미사전례에서 사순절을 구원의 시기라고 부른다.
구원의 기쁨은 속박되어있던 자라야 그 진미를 알 수 있다. 우선 시험을 치러야하는 학생이 그 시험을 치르고 났을 때 공부라는 속박에서 헤어난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감옥에 갇혔던 사람이 석방되어 나왔을 때 구원의 기쁨은 말할 수 없다. 가톨릭교리에 의하면 인간은 죄의 사슬에 속박되어있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그 죄에서의 해방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구원은 바로 이 죄에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통속적으로는 잘 믿고 잘 살다가 천당 간다고도 한다. 신학적으로는 인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에서는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설교에서 늘 하늘나라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역설하셨다. 이 나라는 영생의 나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죄이다. 죄가 없어야 하느님의 자녀도 되고 하늘나라에도 들어갈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이 믿는 사람이라고 죄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다. 통회를 아무리 되게 해봐도 또 죄에 떨어진다. 그야말로 희랍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운명이라 할지.
시시포스는 자기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바윗들을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려 놓아야하는 운명을 지닌 사나이였다.
죽을힘을 다하여 한발자국 밀어 올려놓고 보면 그 바위는 주루루 굴러 떨어진다.
그래도 시시포스는 그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시시포스의 비극은 육중한 돌에 가려워져서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데 있었다. 그것은 도움이라고는 바라볼 수없는 신세였기 때문이었다.
죄의 무게에 짓눌려있는 우리도 이와 비슷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믿음의 눈이 트인 사람에게는 죄의 저 건너편 희망의 전망을 내다볼 수가 있다. 우리를 이끌어줄 지도자의 손길을 잡으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정에서 나약한 아내와 어린이들은 가정의 지도자만 바라고 산다. 그 지도자의 능력 여하에 따라 살아나가는 안심도가 크기도하고 작기도 하다. 한나라의 백성들도 지도자를 잘 만나야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사순절동안 자신의 힘을 정확히 재어보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평가하자면 좀 심하지만 인간은 괴물과도 같다. 사순절 막바지인 성 목요일에는 극심한 우민에 쌓여 울부짓던 다윗성왕의 성시를 읽게 된다.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세상에서 천더기. 사람들의 조롱거리. 사람마다 나를 보고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이 겸허는 다윗이 구원자의 손길을 찾아 부르는 눈이 트이는 순간이었다.
오직 승리만을 회구하였던 다윗성왕은 그 시편 전체에서 하느님을 위대한 지도자로 받들었다.
이제 믿음의 성전(聖戰)을 치르는 우리의 목표는 승리뿐이며 승리도 영원한 승리뿐이다.
겸손한 마음가짐을 닦은 신자들에게는 승리로 이끌어주실 지도자의 손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도자의 자질은 부하들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어야하고 악당을 쳐부수어야하고 그리고 승리의 길로 이끌어야한다.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광주리나 남았을 때 예수님을 스승으로, 지도자로 모시고 따르던 소박한 제자들은 신이 났을 것이다.
위선과 허위에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율법을 들먹이며 백성들을 등쳐먹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통렬히 매도할 때 제자들은 통쾌했을 것이다.
죽음의 행렬을 지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확인했을 때 제자들의 기쁨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전에 믿을 수 없는 예언을 하시던 스승의 말씀 즉 나를 따르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하시던 말씀의 진실 됨을 알고 용기백배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를 회상하면서 복음사가 마태오가 지극히 작은 고을「베를레헴」에서 인류의 영도자가 나리라는 예언서를 인용한대로 우리의 구세주는 우리의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사순절의 기쁨은 고통의 행진을 하는 우리에게 튼튼한 지도자가 있다는 확신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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