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은 뭐니뭐니해도 신자들에게 통회와 보속의 시절로 받아들여진다. 말하자면 고통 속에서 고통의 뜻을 찾는 시절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고통의 운명 속에서 고통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려고 몸부림친다.
재산을 많이 모으면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재산 모으는데 혈안이 된다.
그러나 재산을 모아보아도 고통은 또 다른 고통, 아니 더 큰 고통으로 변하여 그 존재를 에워싼다. 흔히는 재산을 모아보지도 못하고 재산 모으는 고통 속에 헤메기가 일쑤이다.
쾌락에 탐의 해봐도 고통은 여전하다. 명예를 쫒기도 한다. 명예를 쫒는 것조차도 고통스럽지만 명예를 따보아도 고통이다. 학식에 통달한사람은 흡족한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기만족을 할 줄 안다는 것뿐이다. 모든 덕행을 완벽하게 닦은 대로 군자는 있을 수도 없거니와 그래도 자타가 공인하는 인격자가 있다면 그 눈 자기인생에 불만이 없을 것인가 그렇지가 못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덕행이란 자연의 순리를 거슬리지 않는 조화감이라 했고 이 조화감에 젖었을 때 인간은 행복하다고 했지만 그 조화감이 육신을 쓰고 있는 인간이 물성적인 자연 속에서 얻어지느냐는 것은 큰 문제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은 인간은 현실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고통속의 인간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이 인간의 궁극의 원욕이다. 재산추구도 명예ㆍ학식ㆍ덕행 등 모든 인간의 욕구대상이결국은 인간행복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대로 봄이 와야 제비가 날아오는 것이지 제비가 봄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재산 쾌락 학식덕행이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고 행복을 찾아야 전자의 모든 것들이 좋은 것이다.
가톨릭은 이러한 행복을 제시함으로써 물질의 뜻도 찾고 고통의문제도 해결해준다.
불교에서처럼 물욕이 고통을 낳고 따라서 고통을 없이하려면, 물욕을 없이해야 한다면 물질자체가 무의미하고 인생자체가 허황된 것이 된다. 인생자체가 허황한 마당에 더 이상 논난을 벌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물욕은 생명과 조화를 이루는 조화도에서 정당할 수 있고 나쁠 수 있다.
따라서 물질은 생명과의 관련성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고통이 물욕의 부족요구에서 온다면 그 고통은 영원한 차원에서 보면 그리 심각한 것이 못된다. 사순절을 지내는 가톨릭신자는 바로 이 묘리를 명상하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 복되고 우는 사람이 복되고 찾는 사람(은유한사람)이 복되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제자들과 청중은 어리둥절했겠지만 그 복된 이유가 그들이 결국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안심이 되었을 것이다. 생명 이것만이 모든 것의 최고 가치이다.
재산도 쾌락도 생명을 위한 것이고 명예와 학식 이것도 더 잘 살자는 것이고 덕행도 결국은 더 뜻있게 살자는 것이다. 이제 고통의 뜻이 슬슬 풀리기 시작한다. 물질적인 것이 좋아서 그것을 추구하는데도 피땀을 흘려야한다면 좋은 것을 얻는 데는 고통이라는 것이 하나의 방편이 되는 것이 확실하다. 노력 없이 거저 얻으려는 것이 나쁠 따름이다. 그런데 인간이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영원히 살고자하는 염원이 있는 확실한 증거이다. 이 영원한 생명을 제시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교리라면 그리스도교에서 고통의 신비스러운 뜻은 자명해진다.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얻기 위하여는 고통이 없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과 고통을 권장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너희는 나를 따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가고 재판에 넘기고 때리고 하여 핍박할 것이다』고 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이 바로 생명이요 진리요 길이기 때문에 납득이 가는 것이다. 그분이 어째서 생명이요 진리요 길이냐는 것은 믿는 사람에게만 뜻이 있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생명은 돈에 있을 것이고 명예나 학식에 있을 것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영원히)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며 죽었다가는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는 것은 그래도 살아야한다는 용기를 주는 믿음이며 영원한 행복의 나라에서 산다는 믿음은 사순절을 지내는 그리스도 신자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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