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서 지내고 있는 부활절이란 원래 빠스카절의 제2부인데 이를 번역하고 이해하는데 있어 잘못 알아듣거나 혼란을 빚는 일이 없지 않은 듯하다. 빠스카절이란 재의 수요일부터 성신강림대축일까지를 말한다. 이 빠스카절은 1ㆍ2부로 나누어지는데 제1부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어두운 측면 곧 사순절이며 제2부는 예수부활의 밝은 면을 보여주는 오순절 곧 부활절이다.
이 빠스카절의 핵심은 빠스카성야이다.
그것은 빠스카성야예식에서 제1부의 사순절이 2부의 오순절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빠스카성야예식에서 모든 빠스카전례가 시작됐다.
빠스카성야를「부활성야」로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여기서 명심해야할 것은 빠스카성야예식의 주제는 단지 부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빠스카의 신비 자체를 드러내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빠스카의 신비란 항상 2개의 요소, 즉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서 빠스카절은 봄에 지내게 되는데 그것은 대자연이 죽음에서 새 생명으로 넘어가는 계절이 바로 봄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빠스카신비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음과 동시에 죽음에서 부활로 넘어가는 신비라고 할 수 있다.
빠스카신비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은 두 개의 전례주간으로서도 드러난다.
즉 어두운 요소는 성주간이며 밝은 요소는 부활 8부이다.
그런데 나중에 와서 이 빠스카신비의 2개의 요소를 밤 예식이외에서도 따로 떼어 지낼 수 있게 됐다. 즉 어두운 요소인 죽음은 성금요일에 또 밝은 요소인 부활은 부활주일날에도 상기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그래서 결국 3일이 걸리는 큰 축제가 생겨나게 됐다.
이것이 곧 원래의 성삼일로 금ㆍ토ㆍ일 3일이었다. 이 원래의 성삼일은 예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해서 부활로 끝마치게 되어 빠스카신비의 신학을 잘 드러내는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지금의 성삼일은 목ㆍ금ㆍ토 3일로 그것은 후에 와서 여러 가지 복잡한 사래의 성삼일과는 달리 어두운 측면만을 드러내고 있어 다소 잘못돼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목요일은 예수의 송별(만찬식)과 울리브산에서의 수난시작을 상기시키고 금요일은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그리고 토요일은 무덤에 묻혀계심을 의미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의 성삼일과 드러내는데 있어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밝혀두면서 현재의 성삼일전례를 하나씩 설명하겠다. 먼저 성 금요일에 식에서는 미사가 없다. 그 이유는 중세초기에는 미사를 부활의 잔치로 보았기 때문에 따라서 성 금요일에 부활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죽으심을 생각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느껴 부활의 잔치인 미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잘못 생각한 것 같다. 왜냐하면 미사는 부활의 잔치일 뿐 아니라 빠스카의 잔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학적으로 볼 때 성 금요일에도 미사를 지낼 수는 있지만 오래된 전통 때문에 미사를 봉헌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성 금요일에 미사가 없는 것을 모든 신자들이 이상히 느껴왔기 때문에 삐오 12세 교황께서 1955년에 미사 없는 영성체를 허락하게 됐다.
따라서 성 금요일의 예식은 미사가 아니라 말씀의 전례이다. 이 예식의 구조는 3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제1부 독서, 제2부 십자가의 경배, 제3부 영성체동이다.
먼저 독서부분은 원래의 성 금요일예식의 원형으로 성 금요일예식의 출발과 더불어 시작됐으며 제2부인 십자가경배는 4세기경에 그리고 제3부의 영성체는 삐오 12세에 의해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이날 독서의 순서는 평상미사독서와 같으나 복음은 수난복음으로 상당히 길기 때문에 이 낭독하게 된다.
특히 이날 예식에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십자가경배 할 때 신자들의 태도가 경건하고 엄숙해야하겠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하늘나라의 국기를 의미하기 때문인데 흔히 사회에서 태극기 앞이나 국가를 부를 때는 자세를 정중히 취하면서도 성당 안이나 십자가 앞에서 신자들이 취하는 자세는 너무나 경솔하고 무질서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다음으로 우리교회주년의 가장 역사 깊은 축일전례인 빠스카성야예식은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사도시대직후에 시작된듯하다 그때 당시 이 예식의 시각은 어두운 밤에 시작해서 해가 뜬 후 밝을 때 끝마치게 돼 빠스카신비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잘 드러냈다.
지금은 둘 다 밤중에 지내게 되어 그 상징성이 달라졌는데 밤 예식은 밤 자체가 어두운 면을 그리고 예식자체가 빛의 예식이니만큼 그 밝은 면을 드러내고 있다.
빠스카성야예식의 구조는 대개미사의 구조와 비슷하다. 그러니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구성돼있는데 다만 다른 성사를 집행할 때와 같이 두 전례 중간 예성세성사를 거행하게 된다. 만일 성세성사가 없는 경우에는 그것을 상기하는 세례갱신식을 갖는다.
먼저 제1부 말씀의 전례는 빛의 예식과 독서로 구분된다. 빛의 예식은 그 예식전체의 제목을 하나의 서곡처럼 보여준다. 다시 말하면 빠스카의 신비를 통해서 어두운 세상으로부터 밝은 하늘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보여준다. 이점은 빠스카찬미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독서는 과거에는 상당히 길게 했다.
사실 초대교회 어떤 교구에서는 신ㆍ구약성서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한 곳도 있었다.
이런 전통 때문에 우리는 항상 창세기부터 독서를 하게 된다.
현재 독서는 9개만하고 있는데 이를 독서들은 대개다 빠스카의 신비를 설명하는 것이다.
특히 9개의 독서가운데 제3독서인 출애급기 14장은 빠스카신비의 상당히 중요한 사건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생략할 수 없다.
그 외 다른 독서는 경우에 따라 생략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과거에는 빠스카신비와 관계되는 다른 독서들도 낭독했는데 예를 들면 에제키엘 37장(살아난 뼈에 대한 얘기) 같은 것은 앞으로 낭독할 수 있도록 허가 해줬으면 한다. 무엇보다 초대교회 때는 이 밤 예식미사로써 빠스카축제를 끝마쳤다. 따라서 그때는 부활대축일미사가 없었다. 지금 지내오고 있는 부활대축일미사는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다.
성 목요일은 중세후기부터 사순절과 오순절을 여러 가지로 꾸미면서 각각 하나의 특수한 목요일을 덧붙이게 됐는데 사순절의 목요일은 성 목요일이 되고 오순절의 목요일은 예수승천 축일이 됐다.
성 목요일이 덧붙여진 또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중세기 때는 특히 예수의 실존을 거부하는 이단자들의 속출로 목요일이 상당히 중요시하게 됐다. 따라서 원래의 성삼일이 하루 앞당겨지고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겠다.
그리고 위에서 지적한대로 예수승천축일은 원래 목요일인데 한국을 비롯한 포교지방에서는 대개 일요일로 옮겨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태리, 독일, 영국 그 외 서구 각국에서는 지금도 오순절 목요일에 예수승천축일을 지냄과 동시 목ㆍ금ㆍ토 3일을 공휴일로 지내고 있다.
그리고 성목요일에 성체를 모시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데 그것은 지금 예수님이 묻혀계시기 때문에 사도들과 감히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보지마는 전례학역사로 보면 실은 다른 이유였다.
그것은 미사 후마다 감실이 성당 안에 있지 않고 다른 작은 방에 있었기 때문에 성체를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옮겼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보는 상징성은 나중에 덧붙여진 것이며 또 지금 성체가 다른 곳에 있는 것을 무덤이라 하는데 그것은 신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교회의 공식적인 표현방식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성 목요일은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심으로써 우리에게 수난과 부활에 대한 기념성사를 주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끝으로 부활대축일은 전례상으로 특별한 것이 없으며 예수부활의 사실만 얘기해 줄뿐 연중미사와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빠스카시계(時季)를 한단위로 봐야할 것이다.
그것은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되고 성신강림대축일로 끝마치게 된다. 그리고 그 주제는 빠스카의 신비 즉 죽음을 통해서 새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빠스카의 신비는 날마다 이뤄지고 있는 신비이다. 우리는 날마다 빠스카의 신비에 참여함으로써 어두운 이 세상의 상태에서 밝은 은총의 상태로 넘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 빠스카는 우리들의 임종순간이다.
그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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