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한밤 내 악령(惡靈)처럼 하늘을 떠돌며 잠들지 못하는 바람이 분다.
나뭇가지 움트는 작은 눈마다 앙칼진 바람은 꽃을 시새워 싸늘한 장도(粧刀)를 갈며 온밤을 불어댄다.
태동하는 봄을 거역하고 봄을 진 꽃을 시샘하는 저 바람의 포악한 적의(敵意).
그러나 그 차가운 질시와 횡포 밑에서도 꽃은 여전히 봉글고 가지는 실차게 물이 올라 새 생명을 준비하니 깊은 밤 어두운 지하에서도 생명의 햄머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진실로 누가 저 위대한 자연의 역사(役事)를 거역할 수 있는가.
겨울은 길고 밤 또한 아득했다. 죽음 같은 빙설(氷雪)과 어둠의 골짜기 누구도 그 얼어붙은 대지를 칠흑의 밤을 한치인들 비켜설 수 있었던가.
겨울의 저편 밤의 끝에서 동녘 하늘에 태양의 등을 달고 그 열(熱)을 나날이 뜨겁게 달아 올리며 잠든 나무의 뿌리들을 일깨워주는 그 한분 창조주의 경륜이 아니었던들 주야로 가꾸시는 근면하고 어김없는 경륜이 아니었던들 어찌 길고 긴 삼동(三冬) 칠흑의 심연을 헤어날 수 있었을까.
이 모두가 부활이어라.
죽었던 가지마다 움을 티우고 떨어진 자리에 다시 꽃을 맺으며 잠자면 뿌리들이 땅을 가르고 붓끝 같은 생명들을 쏟아내는 이모두가 부활이어라. 하늘의 그 한분이 계획하신 성사(聖事), 부활이어라. 그날도 그처럼, 만상이 얼어붙는 겨울 칠흑의 암야가 시작되듯 고통과 절망에 밝힌 수난의 금요일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토요일의 암담한 하루해도 저물어갔다. 불과 이틀 밤 그러나 그 밤들은 천일(千日)의 암야, 죽음의 겨울처럼 길고 길었다.
제자들의 가슴에선 반짝이던 별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안식의 잠도 잃어버렸다. 괴롭고 슬픈 악몽의 밤이, 공포와 심려와 의혹과 환멸의 길고 긴밤이 연속되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긴 장한(長恨)의 밤이었다. 믿고 따르면 단 한분 희망의 주께서 죽음에 갇히신 밤이었으니.
主는 정말로 돌아가셨다 골고타산상의 십자가 위에 무지한 집행관의 야유와 핍박 속에 피와 흙투성이의 전신을 느리고 한마디 위안의 말도 드리는 이 없이 외롭고 고독하게 숨을 걷우셨다.
틀림없이 그분은 돌아가셨다. 그리고 무덤에 들어가셨다. 제자들의 희망도 인류의 꿈도 그분과 함께 무덤 속에 묻혀버렸다.
그것으로 세기의 극(劇)은 막을 내리고 골고타산상에서 행여나 기대했던, 주께서 십자가를 내려와「사자후」하며 죄인들을 쳐부스기를 기대했던 구원과 해방의 눈부신 왕국의 꿈은 사라져버렸다. 정말로 주는 배신하셨을까? 「나는 아버지의 나라에 당신들의 자리를 마련하리라…당신들은 내 오른편에 앉아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
언약하신 말씀들은 모두가 허언(虛言)이었나? 안개 속에 갇힌듯 슬프고 암담한 제자들 가슴에 허망한 밤은 깊어만 갔다.
참으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들과 함께 그 밤과 같은 공포와 불안 환멸과 절망을 언제던 한번은 느꼈으리라.
한방을 비추던 밝은 등불이 갑자기 꺼지고 내 살아있음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그분께서 무덤 속에 침묵하듯이 따뜻한 육친의 목소리 우정의 손길로 잡히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도 유년(幼年)의 추억도 부질없는 한낱 바람에 번롱되는 나뭇잎 같은 나, 나는 무엇이며 어찌하여 태어나 어디로 가는 걸까 ?그리고 또 죽음이란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은 그 울울(鬱鬱)하고 암담한 회의와 비감(悲感), 바로 그 회의와 비감이 성금요일의 밤 그리스도와 함께 고통 하는 모든 인간의 성 금요일이 아니던가.
사랑에 고민하고 질투에 괴롭고 굶주림에 슬프고 영오의 수인(囚人)들은 자유에 목마르고 그 모든 비탄과 갈망에 얽힌 인간고뇌, 바로 그것이 성 금요일 그리스로의 성 금요일이며 또한 인간의 성 금요일이 아니던가.
절망과 불안과 비탄의 밤, 그러나 죽음의 금요일은 토요일로 이어지고 토요일은 마침내 부활의 아침으로 밝아오는 것이다. 겨울은 계절의 종말이 아니고 밤은 하루의 끝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길고 긴 겨울은 새봄을 잉태하고 암담하던 밤은 찬란한 새벽을 실어온다.
진실로 낮보다 밝은 밤을 삶보다 빛나는 죽음을 자유보다 영광된 구속을 우리는 어디서나 보지 않는가, 슬픔으로 갈(磨)아진 슬기로운 지혜 속에 핍박으로 다져진 불굴의 의지 속에 이 모두가 죽음의 금요일을 이겨낸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르치는 진리며 말씀인 것을 우리는 비로소 안 것이다. 참으로 인간이 어떠한 고난도 고통도 그분의 그것을 따르지 못하고 어떠한 고독도 절망도 그분의 그것을 또한 따르지 못한다. 그렇건만 그분은 보여주셨다.
어떻게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의 고독을 치루어 내는가를 한마디 항변도 없이 손수 수범하셨다.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이겨내셨다.
믿음만이 희망이고 생명임을 그분은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죽어서도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아니 죽음만이 다시 살 수 있는 영원한 삶임을 증거 하신 것이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져 죽고 꽃씨들이 떨어져 땅에 묻혀야만 새로운 생명, 삶의 새 봄이 열리는 것을 일러주신 것이다.
한 시대가 가야 또 한시대가 오고 한 선구자가 죽어야 많은 몽매한 민중이 눈을 뜨고 「다마스코」로 가던 세리 사울이 눈을 뜨고 한 아버지가 죽어야 자식의 가슴에 그 유업이 살아남을 것을 가르쳐 주신다 진실로 보리는 깊은 눈에 덮여 밝히고 밝혀야만 강하게 자라나는 것을 어떠한 불의의 탄압과 핍박도 육신의 생명을 빼앗을지언정 정신의 생명만은 꺾지 못함을 그분은 몸소 보여주신 것이다. 고독한 정의를 혼자 지시고 십자가 위에 희생하심으로써 온 인류에게 참된 삶이 무엇이며 참된 자유 진정한 해방이 어떠한 것인가를 일러주신다.
진실로 그리스도는 십자가위에 피 흘리며 죽으셨기에 부활하셨다. 피 흘리며 죽으셨기에 불의를 이기셨고 피 흘리며 죽으셨기에 완전한 자유를 얻으신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가! 잊어버렸는가! 나는 세상을 이겼노라!」
이렇게 지금도 우리 앞에 서서 외치고 계시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