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삶이라는 소명을 받던 날은 장려한 축복의 날이었습니다.
태양의 뜨거움을 나누고 미풍의 싱그러움을 나누며 대지의 꿈을 나누라고 그분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북 모양 뛰는 심장의 고동과 함께 진공을 견디어 나가는 사랑을 배우라고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내 체내에서 일어나는 신진대사는 우주의 찬가였으며 보내신 분을 위한 봄의 아가(雅歌)였읍니다만 나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읍니다.
내 머리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내 마음에는 풍부한 언어가 있었습니다.
내 입술에는 노래가 있었고 내 혀는 알 수없는 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작은 손에는 열개의 손가락이 온전하여 무엇을 쓰고, 그리고 들고 다니기에 아무런 불편을 몰랐습니다.
부엌에서는 열심히 칼질을 할 수 있었고 아침에는 마당을 비질하여 내 마음의 하늘을 만들었읍니다. 작은 내 다리는 경기장을 질주했고 승리에 도취한 내 마음은 산과 들을 쏘다니며 해와 달과 별과 강물이가는 곳을 배웠읍니다. 태양이 번쩍이며 다가오는 아침에「이 날을 풍요케 하소서」라는 기도를 했고 별이 제 빛을 내는 어둠이오면「이 날을 잘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노래를 불렀읍니다.
그러나 어느 날 참으로 갑자기 어느 날 자신이 깨어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인간으로서 가장 외롭고, 진실하고, 하느님을 섬기는 욥마저 그분을 원망하고 자신을 정당화 시키던 그런 비슷한 순간이었읍니다. 하느님의 사자가 죽음이라는 메시지를 들고 내 곁을 지나갔읍니다. 또 메시지가 오고 또 지나갔읍니다. 갈기갈기 찢기는 영혼의 아픔 때문에 우주의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읍니다.
진공의 상태가 지나갔읍니다. 내 작은 영혼은 항상 불안에 떨었습니다.
노래를 잃었읍니다. 그러나 죽음이 남기고 간 시체를 다듬었습니다.
단칸 삯월세 방에서, 산 꼭대기 오두막집에서, 고층건물 특등병실에서 죽음이 설설 기어다니는 것을 바라보며『안녕』이라는 인사와 함께 100명, 200명을 보냈습니다.
일주일에 두 명, 여덟 명, 한번에 30명이상도 보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인습이라는 굴레를 쓴 사람들은 나를 보고는 쑤근거리며 지나갔습니다.
비정상적이라고 피했읍니다. 어머니는 안타까이 나무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것이 살아있는 최선의 증거였읍니다. 그것밖에 할일이란 도무지 없었으니까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태양에 의해 증발되고 대지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너는 나의 기쁨이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결에서, 하늘에서, 땅에서, 음성이 자꾸만 자꾸만 들려왔습니다.
성인들의 영적 열심도 지고의 순수성도 지니지 못했지만 슬픔에 잇따른 슬픔 속에 내 마음에 낸 발자국은 그분의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동경이었읍니다. 소망이었읍니다. 갈구였읍니다. 초조였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향수였습니다.
그분의 주림을 채우고 그분의 갈증을 해소키 위한 우주적 자력이었읍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음성이 들렸읍니다. 내 주림과 내 갈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과 내 뜻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시키고 세상 사람들의 주림을 채우라고…
나는 어떻게 그 갈증을 해소시킬지, 그 굶주림을 채울지 모릅니다.
내게는 그리스도의 지혜도 로마의 통솔력도 없으니까 말입니다.
내 오른손에는 한 바가지의 물도 내 왼손에는 한줌의 쌀도 들려있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그 갈증을 해소하고 그 굶주림을 채우리까?
무수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정의를 구현하라, 삶을 쇄신하라, 조직을 강화하라 새마을 운동이다, 총화유신이다, 서정쇄신이다, 국민소득을 올려라, 정당한 분배를 하라, 노동임금을 올려라, 50만원짜리 세종회관에 들어가는 표를 사라, 알아듣지 못할 너무도 많은 언어들이 내 주위를 맴돕니다.
힘을 잃은 언어의 곡예 속에 피곤이 내립니다. 비우고 또 비우고 끝없이 비우고 진공을 견디어 나가는 사랑을 배워야겠습니다.
이제 내 언어의 허영은 빛을 잃고 사라집니다.
잿더미 위에 앉아 베옷을 입고 내 생명 속, 거칠고 어긋난 모든 것들이지만 사랑의 등잔에 생명의 불을 붙일 때가 되었읍니다.
아버지의 아들 안에 한 점 티끌이 되는 영광을 바라며 힘겨운 보람에 삽니다.
『모든 이 하나 되게 하소서』하는 근원적인 부르짖음에 삽니다.
주의 영광 크시기에 감사합니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