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가 우리나라를 망쳤다고 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어느 모로 생각하면 전연 잘못된 말도 아니다. 현대 우리나라 감각이 孝에 대하여 그리 애착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것은 결국 이런 말을 뒷받침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 조상들이 孝를 생활의 중심으로 해서 살았고 모든 일에 효를 주장으로 처리한 것만은 사실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사람은 마치 孝하기 위하여 살았고 돌아가신 다음에도 거의 매일을 효를 지키면서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성 싶다. 역사적으로는 고려 말 이조 초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주자학이 국민생활의 사상적 실천적 기초가 되면서 효사상은 나라의 국시처럼 되었고 이것은 그 구체적인 실천과정에서 禮論의 시비를 일으켰고 급기야는 그 유명한 四色党爭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던 것은 누구나 익히 아는 바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孝가 나라를 망쳤다고 말하는데도 일단수긍이 가는 것이다. 그러나 孝라는것은 부모님께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인 만큼 지금 우리가 생각해도 어디까지나 숭상, 진작해야할 德임에는 틀림이 없다. 孝經에 따르면 孝의 이론은「身體髮膚受之父母」라 하여 우리의 몸 전체는 부모님께로부터 받았다는 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자기의 몸을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한다.
자기 몸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육신 그 자체의 손상뿐 아니라 刑을 받음으로써 一身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立身하여 道를 닦고 후세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기면 따라서 부모님을 영예롭게하는 것이 된다. 이것은 孝의 완성이라 한다.
그런데 효는 事親하는데 있는데 事親은 愛親敬親으로 표시된다. 愛親敬親은 평상시에 養父母하여 편안하게 해드리고 병중에는 치유에 노력하고 喪을 당하면 애도를 극진히 하며 제사에는 예를 갖추어 어긋남이 없어야한다. 孝를 君에 적용하면 忠이며 長上에 적용하면 順이된다. 父子之道는 天性이며 君臣의 義이다. 이것은 父母가 나아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事親하는데 愛敬으로써 다하면 천지의 道를 실행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民이 화목하고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요컨대 孝는 모든 德의 本이된다. 이렇듯 論理생활의 절정을 이루고 있을 만큼 절대가치를 가진孝를 중심으로 산 우리나라가 孝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으로 어느정도 수긍이간다면 어디서 잘못된 것이 있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孝라는것이 훌륭한 덕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가치서열이 거의 초월적이라는 데에 있다. 윤리생활이란 모든 행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어떤 절대적인 것에 견주어서 이루어져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인간관계의 덕성을 최고의 것으로 올려놓고 모든 윤리질서를 이를 위하여 정립한다면 어디엔가 잘못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윤리는 균형 잡힌 윤리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윤리는 인간은 전체적으로 하느님의 창조물이란 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행동을 다듬는 규준이 되는 이념을 하느님께로의 귀의(歸依)에 둔다. 이것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며 따라서 최후의 행복이기도 하다. 모든 선행은 이 목적에 부합되느냐에 따라서 평가된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라는 개념에서 孝의 개념도 나온다. 내가 지니고 있는 신체발부가 부모님한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궁극적인 부모님은 역시 창조주이신 하느님이시다.
그러니 직접적인 부모님께 대한 孝는 인간이 이행해야할 전체적인 윤리속의 하나이다.
孝가 부모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면 인간이 가져야할 큰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근거를 두고 인간전체에 대한 사랑이 있고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하는 사랑 중에서 가까운 사랑으로 孝를 꼽는다. 십계명에서도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이행해야 할 도리 중에 첫 번째에 놓여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孝가 하느님이 주신 계명임에는 틀림없지만 모든 德이 여기서부터 나올 만큼 초월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니다.
孝가 인간완성의 길 중에 하나이기는 하지만 인간생활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숭상할 만큼 큰 덕은 아니다. 孝의 진가는 윤리질서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정확히 정립할 때 비로소 올바른 효가 되는 것이다. 인간은 효자가 되기 위하여 산다기보다도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는 것이며 효자가 되는 것은 그길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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