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3년 전 내가 상주읍 서문동본당에서 전교사로 있을 때 일이다.
대구 파티마병원에서 본당 신부님께 간단한 편지가 왔다. 내용인즉 위암으로 병중에 계신 분에게 대세를 주는 것이 좋겠다고 주소와 성명을 적어 보낸 것이었다.
나는 그 편지를 받아들고 찾아가보니 그분은 상주 중안국민학교 교장선생님이셨다.
슬하에는 다섯 남매가 모두 재학 중이고 오랜 교직생활 끝에 교장으로 승진하여 이제 한창 재미있게 사실 때였다. 워낙 성실하신분이시라 몸이 불편해도 참으시면서 근무에 열중하던 중 여름방학이 되자 이제 마음을 푹 놓고 한번 종합 진찰을 받아 볼 양으로 대구 동산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뜻밖에도 위암이라는 진단이란다.
그때 나이49세. 교장으로 승진한지 2년째 되는 해 었다. 자기 소신껏 열심히 일해 보려고 희망에 차계신 그분에게 이것이 웬 당치 않는 소리인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길로 즉시 서울대학병원으로 갔으나 역시 그곳에서도 병명은 같다. 또다시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내려왔다. 역시 위암이라는 진단이다. 너무도 실망한 나머지 입원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면회사절이라고 써 붙이고는 부인 외에는 형제도 친척도 일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 용기를 내어 부인에게 조심스럽게 한번 면회해주기를 청했다.
부인은 모든 것이 귀찮다는 듯이 냉정하게 거절한다.
지금 통증이 나서 고생하다가 잠시 동안 잠이 들었으니 면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깐 기다렸다가 뵈오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잠이 깨면 또 다시 통증이 시작할 것이니 안된다고 두 번 다시 말도 붙일 수 없게 거절한다.
하는 수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돌아오는 길에 깊은 생각에 젖었다.
이제 의술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고 쓰라린 실망뿐이리라 내세를 믿지 않고 인생이 냉혹한 죽음으로 끝난다고 생각할 때 같은 통증을 당하면서도 그 아픔의 척도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실오라기만한 희망도 없고 싸늘한 감정 모든 사물로부터 버림 받았다는 고독감 다가오는 죽음을 공포에 귀착시켜 버린 종말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너무나도 무서운 것이다.
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한번만나 보리라.
주여 도와주소서. 하는데 뚜-
하는 크락숀 소리에 깜짝 놀라보니 집을 지내놓고 정신없이 냉림동까지 걸어왔다.
혼자서 쓴 웃음을 지으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음날 또다시 방문했으나 통증이 심하다고 하면서 냉정히 거절당하였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부인은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니 더구나 그랬으리라.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다 못해 병원수녀님께 가서 독일제 진통제를 몇 개 구해가지고 이번에는 정 수녀님과 함께 찾아갔다.
우리는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집에 당도하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누르니 부인이 나온다.
공손히 인사를 하고나서 부인께 우리가 진통제를 가지고 왔으니 먼저 사용을 하고 몇 분 후에 만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이제 부인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었던지 선생님께 물어보겠다고 했다. 한참 후에 돌아와서 꼭 10분 동안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때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분의 마음을 움직일 것인가, 이 귀한 시간에 어떤 교리를 먼저 설명할 것인가 초조해진다.
지금 같으면 성서에서 한 귀 절 들려드리고 희망과 사랑을 표시할 수 있으련만 그때 우리는 성경을 사용할 줄 몰랐다.
좋은 하느님 말씀을 두고 인간의 복잡한말로 교리를 설명하려했으니 이 주어진 십분 동안에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세자에게 필연적으로 가르칠 4대 도리 즉 천주존재, 강생구속, 삼위일체, 상선벌악에 대해서 가르쳐야만 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시 만날 수 있을런지 없을런지 조차 의문이다.
나는 수녀님과 잠깐 의논 끝에 성세성사에 대해 말씀드리기로 결정했다.
교리를 가르칠 때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상대방을 믿음으로 인도할 때 가지는 가장 어려운 고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신앙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지만 믿음이 생길 때까지는 시간이 요하는 법이다.
일단 믿음이 생긴 다음에 은총을 받는 성사편은 정말 재미있게 가르칠 수가 있다.
그런데 이 10분 동안에 어떻게 할까 정말걱정이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가니 환자는 돌아누워서 야주 가느다란 소리로 『나는 피곤하여 십분 이상을 들을 수 없으니 시계를 놓고 꼭 십분만 말씀하십시오.』하며 쳐다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환자의 등에다 대고 성세성사를 받으면 죄의 용서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의 문에 들어간다는 것만 잠깐 말씀드렸다.
이미 정해진 십분이 되어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다.
그로부터 3일후 주일 새벽 4시경이었다. 황급히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교장선생님의 큰아드님이 우리아버지가 지금 임종직전인데 세례를 받기 원한다고 한다.
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전거를 타고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때 부인은 얼마나 반가와 하는지 내손을 덥석 잡고 하는 말이 『남편의 마지막 유언을 못 들어 드리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 했는지 모릅니다.』
사실은 밤 12시쯤 되어 의식을 잃기 전에 대세를 밤에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의식을 잃었는데 그때는 이미 자정을 넘어 통행금지시간이요. 또 나의 거처도 모르며 그동안 너무도 냉정하게 대했던 부인 자신이 원망스럽기 짝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4시경이나 되어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기에 그때는 온 집안 식구들을 모두 내보내어 나를 찾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 그 말을 들으면서 감사의 정에 못 이겨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무슨 긴말이 필요하랴.
온 가족들과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대세를 붙여 드렸다.
그리고 앉아서 임종경을 드리다 보니 아침 6시 성당에서 상종소리가 은은히 들릴 때 선생님은 조용히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다.
얼마나 감사를 드려야할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감사한 것은 부인의 태도다.
『나는 남편의 유언을 들어 드렸으니 더 바랄 것이 없읍니다. 이제 나도 남편의 뒤를 따라 천주교회에 가겠읍니다. 남편은 잃었으나 하느님을 찾았으니 우리 온가족이 하느님 품에 가서 남편을 만나겠습니다.』고 하는 것이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로 부르시는 방법이 참 다양하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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