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축일을 앞두고 예비신자들이 성세성사를 받기위해서 신부님께 찰고를 받으러 모였다.
할머니 한분은 3년간 온힘을 다해서. 배우고 외웠으나 찰고 할 것이라고는 겨우 주의기도문 뿐이었다. 더구나 앞니가 다 빠져서 발음이 똑똑치 않아 할머니 말을 알아들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했다.
3년간 배운 주의기도문을 외울 때도 떠듬떠듬 앞뒤 순서를 바꾸어가며 하기 때문에 옆에서 들으려면 정말 진땀이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성세를 드리기 위해 적어도 하느님과 구세주 예수님에 대해서는 가르쳐드려야 하겠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구세주라는 말에는 이해가안가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구세주라는 말 자체가 할머니에게는 너무도 생소한 것이다. 어느 날 이 할머니가 힘없이 걸어와 마루 끝에 걸터앉으며 하는 말이 아들은 죽고 며느리는 혼자 살자니 너무도 고생스러워 할머니에게 어린 손자 두 남매를 맡긴 채 강원도로 돈벌러간다며 훌쩍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두 남매를 다 키울 수가 없어 일곱 살 난 손녀는 옆집어른의 소개로 김천 어느 집에 줬는데 가서 잘 있는지 하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울먹였다.
나도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어떻게 할머니를 위로해드려야 좋을지 몰랐다.
그래서『할머니 혹시 어떤 마음씨 좋은 분이 할머니에게 구멍가게나 차려드려서 손자 손녀 데리고 살게 해드린다면 얼마나 좋을까요』하니까『아유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하신다. 『할머니 만약 그런 은인이 계신다면 구세주와도 같이 고맙겠지요.』했더니 할머니는『아-그런 것이 구세주입니까?』한다.
이제 구세주라는 말의 뜻이 조금이해가가는 모양이다.
나는 또 예수님에 대해서도 손짓발짓을 해가며 얘기하여 할머니가 희망과 사랑을 가지도록 위로했다.
아무든 이렇게 애써 예비한 보람이 있어 이 할머니는 피아라는 본명으로 그때 기쁨이 넘치는 영세를 받았다.
그런데 영세를 받고난 후 할머니하시는 말씀이 걸작이었다.
『회장님 이제 나도 영세를 받았으니 천당에 가는 계약금을 걸어놓은 셈이지요? 영세 받기 전에는 성당 저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이제는 앞자리에 앉아도 누가 날 쫓아내지 않겠지요?』
『네 할머니 이제 영세를 받아 천당 가는 계약금은 걸어놨으니 죽을 때 막대금을 치루기 위해 열심히 사시면 돼요.』하고 한바탕 웃었다. 얼마나 순수하고 천진한 마음인가. 천국은 어린이들의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이 새삼 느껴졌다.
그런 후 또 어느날 피아 할머니는 레지오마리에에 입단하겠다며 졸라댄다.
레지오단원이 되면 일주간에 두 시간 이상 활동을 해야하는 등 할머님에게는 너무 힘겨운 일이라고 누차 얘기해도 막무가내로 졸라대신다 할 수 없이 토요일 회합 때 한번 참석을 시켜 들였다. 그런 후 다음 토요일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헐레벌떡 뛰어와서는 자기와 함께 전교를 하러가자는 것이다. 나는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 다음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하니『아닙니다. 지금 빨리 가서 회장님이 한마디만하면 됩니다. 내가 다 해놓았으니 가보면 알 것입니다』하며 다짜고짜로 손목을 끌어댄다. 할 수 없이 따라가 본 즉 어떤 젊은 부부가 새로 이사를 왔는데 갑자기 부인이 병이나 정신없이 앓아 누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고 갓난아이는 울어대고 남편은 국민학교 교사인지라 출근을 해야 할 판인데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때 이 할머니가 소문을 듣고 쫓아가서는 그때부터 며칠간아기 기저귀도 빨고 밥도 짓고 병간호를 하며 그 선생님이 아무걱정 없이 출근하도록 해드렸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토요일 레지오회 할 때 활동보고를 하기위해 그 선생님에게 이제부터 성당에 다니면 어떻겠느냐고 하니『할머니께서 다니시는 성당이라면 저도 가겠습니다.』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정말 감탄했다. 사도 바오로가 꼬린토 전서에서『그리스도의 몸과 지체에서 눈이 손더러「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머리가 발더러 나는 네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몸 가운데서 약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라고 하신 말씀, 또『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이익을 위한 것입니다』한말을 생각하며 난 참 공동체가 과연 이런 것이구나 하고 새삼 깊이 느꼈다. 우리는 흔히 말로 사랑한다 하면서도 사랑하기위해 따르는 희생은 두려워한다.
주기는 좋아하나 잃기는 무서워한다. 남의 뜻을 따르면서 동시에 자기 뜻에 따라 살 수 없음을 알아채면 초조와 불안에 사로잡힌다.
과연 참사랑을 실천하기란 어렵다. 내가 인간의 말을 다 할 수 있고 천사의 말까지 할 수 있다 하더라도「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란 점」을 이 할머니로 인해 난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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