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막대 들고 또 한 손에 가시 쥐어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먼저 알고 지금 길로 오도다」우리나라 옛 시의 한토막이다. 꽃은 피었다가 한번은 지게 마련이다. 인간도 이 세상에서 청춘의 아름다움을 통해서 백발과 함께 인생의 황혼을 맞이함은 대자연의 철칙이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인생의 경륜이다. 그 누군들 이러한 경륜에서 제외될 수 없다.
흔히 젊은이들의 노인들에 대한 냉대와 멸시는 마치 그들은 늙지 않을 인생인 것처럼 생각하는 큰 착각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더불어 물질문명의 발전 그 뒤에는 정신적인 후진성과 함께 물질문명의 발전과 반비례로 정신적인 퇴폐사조가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있다. 그중에 하나가 늙은이들에 대한 불경사상이다.
소위「핵가족시대」라는 구호를 걸고 전통적인 우리의 가족제도가 위협을 받으면서 여기서 희생의 제물이 되는 사람들이 늙은 우리네 부모님들이다. 구라파에서 밀려들어온「핵가족주의」라고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핵가족주의」그것만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결국 일방적인 한편만을 보고 그것과 부수된 중요한 다른 면은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핵가족제도」와 함께 공존하는 노후대책의 사회적인 보장이 되어 있다. 사상적인 방향도 그렇다. 늙은이들은 으례 자식들을 떠나 혼자 노년기를 보내겠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젊었을 때 일한 그 댓가로 노후대책이 완벽하게 해결되어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에는 젊은이들의 일방적인 사고방식으로 늙은이들에 대한 몰이해와 사회적인 여건에 맞지 않는 태도에서 결국 늙은 부모님들이 소외를 당하고 냉대를 받게 된다.
수 천 년이 전통적인 대가족주의 사상이 일조일석에 변할 수가 없으며 인간은 동시에 사회적인 복지제도와 떨어질 수 없는 문제이다. 또 하나 오늘의 문제점은 젊은이들의 대거사회진출 경향과 비례하여 의학과 생활양식의 발전으로 결과 된 수명의 연장이다.
이 두사이에「갭」이 더 크게 생기고 있는 점이다. 둘 다 좋은 현상이다.
우리는 젊은이들의 사회진출로 역사를 더 젊게 할 수 있고 늙은이들의 연장된 수명으로 경로사상과 함께 어른들의 풍부한 지혜와 경험을 배울 수 있다. 문제는 이 두사이의 간격을 어떻게 서로가 이해를 하면서 정신적으로나마 좁힐 수 있느냐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래된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오래된 포도주를 마시고 오래된 친구를 신용하고 오래된 작가를 읽어야하듯이 오랜 삶의 주인공 어른들의 노숙한 교양과 경험을 존중해야한다.
언젠가 들은 얘기가 있다.
서울 어떤 아파트에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자식 다섯 남매를 가진 어머니였다. 자식들이 어머니 모시기를 서로 미루는 통에 결국 혼자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할머니는 아침에 노일혈로 쓰러졌다. 가끔 찾아오는 친구 할머니가 방문했다.
문은 잠겨있었고 사람은 흔적이 없었다. 친구는 몇 번이고 돌아갔다. 삼일 후에는 이상한 눈치를 채고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할머니는 혼자서 악취를 풍기면서 죽어 썩어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혼자 죽어가도 모르고 있었던 그 자식들이 과연 이 세상에서 행복할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사회의 풍조에 따르면 이러한 비인륜적인 결과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젊은이들이 이러한 처사에 무관심하다던 그들은 스스로 불행의 구덩이를 파는 어리석은 무리들이다. 어버이를 냉대한 자식은 그것과 똑같은 모양으로 냉대를 받게 마련이다.
누군들 늙음의 길을 외면할 수 있으랴!
서양격언에「노인을 모신 가정에는 길조(吉兆)가 있다」「집에 노인이 안계시면 빌려서라도 모셔라」하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편 늙은이 일방도에 대해서 이런 말도 있다.
「늙은이는 젊은 사람들의 청춘의 즐거움을 방해하려는 폭군이다」
우리는 만사에 있어서 정도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늙은이들의 지나친 젊은이들에 대한 혐오도 있을 수 없으며 더구나 젊은 세대들이 늙은 세대에 대한 지나친 경멸의 사상도 지양되어야한다. 젊은이들은 노인만큼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만사에 있어서 동양적인 효도의 사상을 다시 한번 깨우쳐야 하리라.
효(孝)자는 늙은이(老)노자에 아들(子)이 들어가서 늙은이를 업고 있는데서 기원을 두고 있다. 아들이 늙은 어버이를 업을 수 있는 우리의 전통적인 효도야말로 우리의 가정과 사회의 근본윤리의 바탕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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