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소에서의 생활 중 가장 힘드는 날은 비가 오시는 날이다. 예민하고 신경이 날카롭도록 피로한 그들은 날씨에 무척 민감한 편이라 자칫 그들의 여윈 마음에 상처를 남기곤 한다.
천식이 심해 가랑거리는 할아버지의 거치른 숨결, 간간이 들리는 옆방 여자의 흐느낌소리, 숨이 차서 맑은 공기마저 자유로이 호흡할 수 없는 저들…
주여! 제가 저들에게 무얼 드리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다면 오직 그들의 영욕을 당신께 맡겨 드리는 것뿐이읍니다.
소낙비가 마구 쏟아지는 오후였다.
또 다시 열이 나서 해열제를, 팔다리가 쑤시니 진통제를, 잠 좀 자게 안정제를 좀…하며 어린애처럼 마구 보채는 그들이 좀 두렵기는 했지만 또 악화될 그들의 병세에 마음속 긴 잠을 삼키며 안절부절 해지는 마음에 침착성을 가지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창밖으로 아래 병실을 내려다보던 난 깜짝 놀랐다.
중환자실의 이태윤씨가 비를 흠뻑 맞으며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을 돌아다니는게 아닌가?
무척이도 내성적인 그는 항상 말없이 누워있었으며 껌벅이는 그의 눈길을 의식하면서도 난 한번도 그와의 대화를 가질 기회를 찾지 못했다.
자주 객혈을 하는 그였기에 난 더욱 그의 건강이 걱정되었다. 경환자를 시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그를 자리에 눕힌 후, 난 그의 옆에 앉았다 푹 꺼진 그의 눈, 튀어나온 광대뼈, 바싹 마른 입술, 그는 무슨 말을 할양 혀끝으로 입술을 축인다.
그는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말을 이었다.
『담배도 술도 아내도 자식도 모두 모두 잊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난 지금 너무나도 갑갑합니다. 하늘과 땅이 납작하게 눌려 버리는 것 같아요. 이것은 오직 생에 대한 애착 때문만은 아닙니다. 육신적인 고통 때문만은 더욱 아닙니다.』
그는 다시 숨을 들이마시며 창에 부딪치는 빗줄기를 응사하더니 저 비를, 저 비를 한번 더 맞아보고 싶어요.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키려고 한다.
『안돼요! 참아야 해요』
『수녀님은 모르실거예요. 내가 얼마나 어둠속을 헤매고 있는지를…
수녀님께선 소낙비 속을 뛰어들고 싶도록, 비오는 날 냇가에서 수영을 하도록 마음 속 갈증을 느껴 보셨나요? 제가 병이 든 것도, 아내를 버리고 가정을 파괴한 것도 어쩌면 그 갈증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태윤씨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하느님께서 매초에 사람을 만드실 때 무한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그런데 인간은 그걸 잃어버렸어요. 하지만 주께서 주신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고픈 욕망은 아직 남아있어서 이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해도 그것은 유한성을 지난 것들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는 거예요. 마치 우물가에서 바다를 찾으려는 어리석은 자의 소행 같기도 하지요. 난 태윤씨의 말의 이해할 수 있어요.
태윤씨의 질문처럼 난 비를 맞고 싶은 것보다 쏟아지는 빗속을 마냥 질주해 달려도 보았는걸요. 물론 신앙을 알기전이지요.』
그는 뜻 모를 웃음을 피식 웃었다.
『예수께선 바로 이 갈증을 없이해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으며 예수 친히 목마르다고 외치신 장본인이셔요. 물론 하느님을 안다고 그 갈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예요. 아니, 더욱 심할지도 몰라요. 그러나 참는 것이 달라요. 참는 거예요. 만약에 세상 사람이 자기하고 싶은 대로 다 한다면 이 세상은 순식간에 홍수가 난듯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되겠지요. 나라의 국법 때문이든 체면 때문이든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자연법칙은 질서를 유지하고 세상이 존재하는 지도 모르지요.』
『수녀님, 그러던 수녀님들의 마음은 무엇이 존재합니까. 행복을 말살하고 도피하고 물질도 형제도 명예도 인간의 사랑도 포기하는 수녀님과 그것들을 죽도록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아! 역시 우리와는 통할 수 없는 장벽이 있군요.』
난 그의 노골적인 반문에 마음속에 당황하면서도
『태윤씨와 우리는 똑같아요.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 태윤씨는 신앙을 못 가졌다는 점에 태윤씨는 조금 전 내적갈증 때문에 아내도 가정도 건당도 파괴했다고 하셨지요.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정말 세상의 도피자라면 태윤씨와 틀리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행복, 사랑, 물질, 명예 면에서 대한 욕심이 누구보다 강한지 몰라요. 그러나 세상의 그것들은 곧 지나가 버리고 말 헛된 사물이기에 우리는 갈증을 느끼지 않고 영원한 행복, 영원한 사랑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 잠시 포기하는 것뿐이 예요.』
그는 나의 말에 수긍이간듯 고개를 끄덕인다.
순수내적 세계만을 다루는 재미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밤 9시 30분 그는 임종대세를 받고 평화로운 얼굴로 임종했다.
임종 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천국에 가서 빌겠습니다. 수녀님들께서 오래오래 이렇게 좋은 일을 하실 수 있도록…
전신의 섭리, 자연법칙대로 순수히 갑니다.』
아! 나에겐 얼마나 크게 위안되는 말이었는지…
그의 양 볼에 흐른 마지막 두 줄기 눈물이 불빛아래 유난히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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