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충한 판자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니는 우리의 발길, 조그만한 뒷박 같은 방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풍겨오는 구수한 저녁 된장찌개 냄새『아이고 수녀님、손이 얼었어요. 들어오셔서 손 좀 녹이고 가세요.』그들의 상냥한 말소리는 문득 나의 먼 옛 고향을 연상시키며 그들은 어느새 모두 사랑하는 내 가족으로 변한다. 같이 앉아 식사라도 하고 싶은 묘한 충동까지도 느끼는 것이다.
어른이란 없는 쓸쓸한 집에 꼬마들이 수제비 국을 끓이는 모습을 볼 때도 종종 있다.
그땐 나도 같이 그 집 청소도 해주고 수제비도 떼어준다. 그들 중 잊지 못하는 마리아 엄마라는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는데 우리만 보면 어떻게든 자기 집에 끌고 들어가 아직 뜸도 들지 않은 겨우 쌀이 익은 밥을 냄비채로 들고 와 식사를 권하는가하면 하다못해 뽀빠이나 풀빵이라도 사와서 한 개라도 먹는 것을 보아야 기뻐하는 아주머니였다. 더욱 시간이 바쁜데 그분께 붙잡힐까봐 얼른 그 집앞을 지나갈 때도 있었지만 단 며칠이라도 그 아주머니가 안보이면 우린 궁금해 못 견딘다. 50세가 넘은 남편이 지겟벌이를 해서 6식구가 살고 있으며 남편에 비해 좀 젊은 편이나 항상 위장병으로 고생하시는 그 아주머닌 딸이 4명이나 되었다.
우리가 그 아주머니를 알게 된 것도 영양실조로 얘기를 못 낳어 며칠동안 지쳐있던 아주머니를 이웃사람이 보다 못해 업고 온 것이 인연이 되어서였다.
정말 그땐 하느님이 도우셨을까?
산모가 위험하니 빨리 산부인과에 가야 한다고 차를 부르러 보호자를 찾으려 가려는데 어쩌면 될 것 같다는 의사선생님 말씀과 함께 잠시 후 들려오는 아기의 울음소리ㅡ.
산모도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한 우린 경사가 났다며 아무준비도 없으니 꺼즈를 내놓고 세탁한 커텐까지 내놓고 왔다갔다 법석을 떨었을 인연이 되어서였다.
집이 가까운 환자들까지 집에 가서 자기의 털바지와 웨타를 가지고 오고 헌포대기를 가져와 가난한 엄마와 아기를 따뜻히 감싸주었다.
이제껏 진료소에서 아기를 낳은 예는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늦게서야 소식 듣고 지게를 진채 터덜터덜 오신 아저씨.
『우짜노! 미역도 못 쌌는데』하시며 되려 밖으로 나가시는 것을 불러들였다.
마리아병원에서 낳았다고 그때부터 아기의 이름은 마리아가 되었다. 그 마리아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으나 2년간 결핵치료를 해야 했으니 역시 가난이란 병을 낳는가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의 휴식시간에 우린 약방에 앉아 밀린 약을 싸고 있는데 마리아엄마께서 쟁반에 무엇을 가득 들고 오셨다.
『수녀님、오늘이 마리아 돌날인데 전 수녀님들 한번이라도 대접하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그러나 수녀님들께선 우리집 음식을 한번도 안 잡수셨어요.
쟁반도 밥통도 접시도 새로 샀어요. 안심하고 맛있게 잡수세요.』하며 나가신다.
우린 정말 한 대 크게 맞은 것 같았다. 난 그때 깨달았다.
그들은 같이 먹고 마시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들…
그러나 댓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며 가난한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 우린 작은 물건도 음식도 사양했었다.
깨끗한 새 밥통엔 식혜가 담기고 접시엔 흰떡을 푸짐히 담고 튀김까지 곁들어 있었다.
그분의 사랑과 정성이 물씬 풍긴다.
그러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던 아저씨의 모습과 물건이라곤 다 찌그러진 사과 궤짝위에 엎혀진 몇 개의 밥그릇과 방안에도 그와 같은 옷 궤짝하나가 그들의 전 재산임을 생각할 때 우린 떡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록 가난해도 철철 넘치는 그분의 푸짐한 인정은 봄날의 훈풍처럼 겨울의 따스한 햇살처럼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후부터 가정에 작은 어떤 일이 생기면 그들 내외는 우리를 찾아와 의논을 하고 또 글을 모르는 그들이기에 십이단을 외다가 거룩히 빛나시며 다음에 뭔지 잊었다고 쫓아오기도 한다.
그렇듯 명랑하고 단순한 그들보다 신앙을 가졌다는 내가 더 그들 가정을 염려하고 걱정했던 자신이 우습다.
점점 늙어가는 아저씨, 병약한 아주머니, 꼬마들 4형제.
그래도 그들은 앞날을 걱정하지 않았다. 아이가 남의 우산을 부러뜨려 물어내라면서 이웃집으로 부터 머리를 뜯기고 또 아이들이 많아서 시끄럽다고 셋방을 못 구해 남의 집 헛간을 잠깐 빌렸다고도 말하나 그들은 결코 실망할 줄 몰랐다. 오직 우리가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이었다. 아니 가난한 사람대부분이 그랬다. 그러나 일이 바빠 일일이 그들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없는 우린 생각 못해 일을 하지 않는 토요일 오후 환자들을 위주로 교리반을 설치했다. 이것은 빈자들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위해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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