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그곳의 산꼭대기 마을들로 새마을 운동으로 많이 깨끗해지고 또 그간 몇 차례나 판자집들을 철거해서 아파트를 세우고 하여 비록 가난해도 외면으로는 그렇게 허술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그대로 남은 마을도 있지만… 시커멓고 우중충한 판자지붕、그나마 판자집도 없어서 땅위에 텐트를 치고 사는 사람들-그들의 직업은 대부분 노동이었으며 그나마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놀아야 하는 하루품삯꾼 들이다.
아빠의 벌이로는 식구들밥도 못 먹으니 엄마들이 채소나 생선을 팔아 끼니를 잇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가 아침 일찍 일을 나가면 집에 남은 꼬마들은 울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솥뚜껑을 열어젖히고 새까만 깡보리밥을 손으로 먹는다. 얼굴은 온통 흙과 코로 범벅이되고 온몸은 개굴창에 딩굴고 놀아서 엉망이다. 물이 있어도 자기들끼리 놀면 깜둥이일 텐데 더구나 물까지 귀에 하루 두번씩 물차가 오면 서로 받으려고 끝없이 줄지어져 물통이 놓인다.
어찌 세수인들 깨끗이 할 수 있겠는가? 혼자 딩굴며 놀다가 혹 우리가 들어가면 이모, 이모 하며 옷자락에 매달렸다. 내가 진료소에 있기 전 탁아소에서 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반가왔는지 모른다.
우린 그때 일일이 가정방문을 해서 날품일하는 부모들의 자녀로서 하루종일 보아줄 사람이 없는 어린아이85명을 위주로 탁아소를 설치했었다. 그리고 수녀님이라는 호칭대신 그들과 더욱 가까와 지기위해 이모라고 부르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심심하던 차 우리를 보면 붙잡고 놓아주려 않는다. 그리곤 눈을 깜빡이며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다.
『글쎄 저 수채구멍에서 아까 쥐가 나오더니 김치쪽을 물고 막 들어갔어요. 그거 엄마 쥐예요? 아빠 쥐예요?』
『글쎄 김치를 물고 갔으니 아마 엄마 쥐겠지?』
난 꼬마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메말라버릴 그들의 동심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했다. 시간만나면 가정방문을 한다.
얼굴이 퉁퉁 부은 임산부가 텐트속의 흙 위에 담요를 깔고 누워있으면서 젖이 안나와 힘없이 울어대는 아기가 불쌍해 우유를 구해들고 찾아갔을 때, 이미 죽어버린 아기… 여러 사람의 협조로 병원에 입원했던 아주머니-.
그렇듯 가난한마을 곳곳에 우리 무료진료소가 세 군데나 있었으며 각각 의사선생님 한분과 우리수녀들 네 분씩 일을 맡고 계셨다. 물론 그중 나도 한사람이었고…
아침을 먹고 우린 도시락과 그날 쓸 약품 및 치료기구를 들고 의사선생님과 함께 판자마을로 향한다.
웬지 묵직한 마음、거기에 물까지 한통 싣고 가야하니 짐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수백명의 환자들에게 설득을 시키고、울면서 매달리는 그들의 하소연도 들어야하고 또 속임도 당해야하고 형사노릇도 해야하니 말이다. 아침 9시가 되어 진료소 문을 열면 끝없이 줄지어 있는 무리들…처음엔 서로 먼저들 왔다고 싸움들을 하고 질서가 문란했으나 세월이 가니 질서가 잡히고 조용히 줄지어 자기의 차례를 기다릴 줄 안다. 그러나 진료소에 일하면서 애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육신적인 병뿐 아니라 동시에 영신적 진리를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둘째 가난한 자 중에서도 제일 가난한 사람을 택해야하는데 거기에 대한 우리의 무 분별력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생활이 괜찮은 사람도 가난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또 찢어지게 가난해도 성격적으로 깔끔한 옷차림으로 오고 거기에다 얼굴인상까지 좋으면 더욱 혜택을 못 받고 가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비록 가난해도 오래된 만성병이나 앞으로 오래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은 장기간 혜택을 줄 수없는 점이다.
신경통, 고혈압, 오래된 신장염 심한결핵등 물론 그 병이 고통이 적다거나 또는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다.
5년, 10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그들을 끊지 않고 계속 치료하다 보면 곧 수술하면 완쾌할 환자들마저 혜택을 못 받게 되니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가난하고 환자도 저렇게 중한데 왜 진찰권을 빼앗느냐고 울부짖는 그들에게 우리의 애로점이 통할리가 없었다.
무슨 일이든 본래의 목적대로 사명을 이행하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지…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한마디로 가난이란 말은 무섭고 매력 없는 단어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고 육신도 정신도 정도 찌드러지게 가난한 그들. 생활이 좀 괜찮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면 그들에겐 고마운 인사도 받고 우리의 면목도 서고 또 가난한 사람에 비해 약값도 몇% 더 받으면 경제적 부담도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사명에 어긋날 뿐더라 그렇게 되면 가난한 사람이 그만큼 손해를 보며 우리의부족한 판단력과 감정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욕을 먹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을 택해야 하고 시간이 없어 쩔쩔매면서도 짤막한 휴식이나 일이 끝난 후에도 늦게까지 환자들 가정방문을 일일이해야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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