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료소에 벙어리에다 귀까지 먼 정 선호라는 청년환자가-알 수 없는 슬픔을 담은 눈을 한-있었다.
『수녀님 저 환자 좀 봐요. 꼭 눈물이 콱 쏟아질 것 같지 않아요? 아마 말도 못하는데다가 병까지 나서 그런가 봐요.』
같이 일하는 한 수녀님의 말씀이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는 내부에 더 커더란 어떤 덩어리를 안고 있는 듯해 보였다.
여인의 슬픈 눈들은 자주 얘기삼아 말하기도하고 또한 어울리기조차 하지만 깊은 샘 같은 슬픔을 키우고 있는 듯한 그의 눈은 정말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열심히 치료하면 곧 나을 수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확신에 찬 말씀도 있어 부지런히 치료에 응할 것을 요구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여서 언제나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오곤 했다.
난 수화(手話)를 할 줄 몰랐지만 다행히 그가 글을 알고 있어 펜으로 건강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병원에서 치료한지 5개월쯤 되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겟세마니 등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그림과 백합꽃을 들고서계시는 성모님을 그린 두 폭의 그림을 선물로 가져왔다. 우린 아무리 작은 선물이라도 환자들에게선 받지 못하게 되어있지만 마침 사순절이전 그때의 예수님 그림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한 심혈을 기울여 그렸다는 그의 덧붙임이 간곡해서 받기로 했지만 기실 받고 보니 그의 호의 이상으로 마음에 꼭 드는, 가지고 싶은 그림이었다.
그런데 그림속의 성모님의 눈-그의 눈보다 더 슬픈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 그 눈을 대했을 때는 뭉클한 슬픔이 내부에서 치밀어오는걸 어쩔 수 없었다.
책상 위 종이에 그가 글을 썼다.
『그림, 마음에 듭니까?』
『예, 너무 잘 그렸어요. 정말 고마워요』
난 다소 센티멘탈한 물먹은 소리로 대답했다.
『진정입니까?』다시 그가 물어왔을 때 그렇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난 너무나도 솔직했다.『그런데 성모님의 눈이 너무 슬퍼 보여요』순간 그의 백납 같은 얼굴이 잠시 내게 머물더니 그림들을 나꿔채 가지곤 내게는 일각의 여유도 주지 않고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그는 다른 것보다 특히 초상화를 즐겨 그린단다. 한데 그리는 것마다 비극적인 것뿐인데다 보는 이마다 그렇게 평을 하니 그때마다 그의 신경은 극도를 달리고-. 안타까운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소질이 아까와 딴에는 알려진 화가들에게 몇 차례 지도를 시켰지만 그것도 그뿐, 그는 그저 자기대로 그리기만 할뿐이었다.
『밤낮을 모르고 구석골방에서 그려대지만 누가 그 그림을 알아주기나 해야지요.』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위사람들이었다. 생활에 쪼들리는 어머니를 도우기 위해 극장 간판을 그려야했고 더욱 그를 몰아대는 것은 친척들의 냉소였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그의 어머니께서 그가 보냈다며 성모님의 고친얼굴을 갖고 오셨다.
하지만 입모양만 웃을 뿐 변한 것이라곤 없었다.
마치 처참한 가슴을 가진 배우가 희극을 해야 될 때의 그런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후 그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치료를 중단하면 안 되는 그의 건강이 염려되어 일찍 끝난 어느 날, 병상 챠트에 적힌 주소를 찾았다.
그의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어머니와 누이만 있을 뿐 그는 집에 없었다.
<계속>
본사는 입교수기 일선전교사의 체험기 독자논단, 제언 등 독자여러분의 참신한 글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입교수기는 입교동기와 입교당시의 심리적 배경 등을 내용으로 적어 보내시면 되고 독자논단, 제언 등은 여러분이 세상에 하시고 싶은 말들을 쓰시면 됩니다. 많은 투고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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