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수녀님, 어서 들어오세요. 글쎄, 애가 도대체 연락도 없이 어저껜 들어오지도 않았지 머에요. 서계시지만 마시고 들어오세요. 그 애 방도 좀 보시고』
그의 골방은 작았지만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오른쪽 액자에 그려져 있는 한 폭의 풍경화-작은 오솔길과 주의의 나무들-가시나무, 꽃나무, 여러 종류의 나무가 그려진 그림.
그 전 인간의 삶을 상징하고 있었다. 살아가는데 있어 우린 가시나무도 만날 수 있고 향기로운 꽃밭도 만날 수 있다. 즉 고통과 환희를 번갈아가며 체험하면서 둘이서도 갈 수없는 혼자의 길을 우리는 가야하지 않는가?
그러나, 다음 순간, 난 얼마나 큰 타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인 초상화마다 눈만이 하얗게 뚫려있었다.
게다가 어떤 그림의 한쪽 눈엔 칼이 꽂혀 있는 게 아닌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충격으로 와들와들 떨고 있는 내게
『수녀님 진정하세요. 그 미친놈 매일 저런답니다.』
그의 어머니 말씀이다.
난 문득 그의 슬픈 눈이 생각났다. 그렇다. 그는 죽도록 번민한 것이다.
그의 그림속의 슬픔은 그의 슬픔인 것이다. 그는 고통을 그림 속에 나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생각했다. 훗날 그가 기쁨을 찾는 날, 그의 그림은 미소를 띨 거라고. 어쩌던 신앙이 그를 슬픔에서 헤어나게 할지도 모른다고.
그날부터 그가 어서 우리병원에 들어오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또한 기다렸다.
내기도의 결과인지 얼마 후 과연 그는 왔다.
그러나 난 어떻게 그에게 신앙의 말을 꺼내야할지를 몰랐다.
먼저 난 독특한 그의 성격을 이해하고 그의 슬픔을 등감해야만 했다.
한 인간을 안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간 왜 병원에 오지 않았죠?』
난 또 글로 써가며 물었다.
『이제 그림 그리지 않아요.』
그는 묻지도 않은 말을 쓴다.
『왜요?』
『전 슬픈 얼굴밖에 그리지 못해요. 그건 제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것밖에 그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슬픔이라는 단어에 접근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어쩔 수없는 일인걸요』
『어쩔 수 없다니요. 누군가가 말했어요.
그린다는 작업은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세계를 나타내는 거라고요.
자신이 절감하는 고독은 어느 누구하고 라도 함께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것이라고요.
그리세요. 그리다보면 열중하는 만큼의 즐거움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즐거움이 가득한 그림을 그리게 될 거예요』
그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의 내부에 어떤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트여진 대화는 그를 어느 정도 번민에서 헤어나게 했고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며 거기에 대처할 용기를 돋우는듯했다.
난 글씨로써만 얘기 하는 게 아니라 몸짓 손짓으로도 그와 대화하면서 한편으로 신앙의 문을 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정신적인 안정이 그를 평화롭게 하자, 우린 하느님과 그의 무한한 사랑에 대해애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내가 애초에 했던 약간의 걱정도 아랑곳없이 마치 물먹는 스폰지 마냥 내가 얘기해주는 교리를 잘 받아들였다.
이제 그의 긴 방황-아마 그의 생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으리라-이 접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이 시작되었다.
얼마 후 그는 한 장의 그림을 내게 가지고 왔다.
난 알뜰히 액자에 넣어 병원의 입구에 걸어놓았다.
밤색 판에 흰옷의 성모님은 화한 미소로 우리를 내려다보시는 성모님은 참으로 아름다우셨지만 어떻게 보면 슬퍼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슬픔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또한 한번 고통을 극복했다 해서 영원히 없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값진 것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고통 뒤에 더 큰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다.
그 후 사람들은 병원입구에서 미소 짓고 서있는 그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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