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봄은 만물이 약동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마음의 변동과 알지 못할 그 무엇을 안겨다준다.
하루 종일 울안에만 갇혀 있는 구호소 환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밖을 내다보며 무척 나가고 싶어들 한다.
병이 중한 사람은 어쩔 수없이 항상 누워있어야 했지만 경환자이 젋은 이들과 결핵 초기인 아이들의 갑갑함은 정말 이해하고도 남았다.
그러한 그들의 마음을 다소나마 해소시키기 위해 잘 나다닐 수 있는 환자 40여명쯤만 데리고 소풍을 가기로 했다. 그들은 국민학교 어린이처럼 새벽부터 청소들을 하고 마음이 들뜬 듯 마당을 서성거렸다.
길이 계시는 수녀님께선 김밥을 맛있게 싸주시며 나 더러 환자들과 같이 다녀오라는 것이다. 욕심 같아선 그 수녀님과 같이 가고 싶었지만 집에서도 역시 환자들이 남아있으니 어쩔 수없이 본원수녀님 한분을 청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가까운 뒷산으로 정했으나 넓은 장소가 없어서 좀 더 걷기로 했다.
난 산을 무척 좋아했지만 웬지 어깨가 무거운 것 같았다.
그러나 연세가 높으신 할아버지도, 젊은이들도, 새침뜨기 아가씨도 모두 푸른 동심과 꿈에 젖은 소년소녀들 같았다.
우리 일행은 바닷가를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산속엔 이름 모를 아름다운 들꽃들이 피어있고 울창한 숲과 나무로 병풍을 이룬 한가운데 우리가 놀 수 있을 만큼 파아란 잔디가 곱게 깔려 있었다.
마치 푸른 목장의 양떼들이 풀을 뜯듯이 모든 시름을 잊고 맑은 산공기의 심호흡을 만끽하는 그들의 상기된 얼굴들은 하나의 조각품처럼 나를 감동시켰다.
누가만일 이들을 본다면 작은 살풍경 속에 초라한 무리같이 한없이 처절하고 쓸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은 가난했기에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알았다.
아늑한 숲, 일렁이는 바람, 파아란 하늘에 떠도는 구름한 점, 맑고 신선한 공기 이 모든 것이 이들의 기쁨이요. 크나 큰 선물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면서 즐거움을 나누는 시간, 우린 그들과 오락도하고 게임도하고 과자를 상품으로 보물찾기도 했다. 그런데 곤란한일이 생겼다. 즐거운 노래시간, 그들은 나에게 독창을 시키는 것이다.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나의 노래를 기다린다. 음악을 듣긴 좋아하지만 정말 할 줄은 모르는 내가 더구나 대중들 앞에서 독창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들에게 끝가지 사양해서 유쾌한 분위기를 깨트릴 수도 없었다.
난 그럴 줄 알고 미리 하모니커를 준비해 갔었다.
난 하모니커로 성가를 했다. 그런데 어떤 여자환자가
『수녀님, 사회노래 한번만 해보세요.』
즉 유행가를 해보란다. 생각이 안 났다.
『조용해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 부를 테니』
난「고향무정」이라는 노래를 하모니커로 불고 그들은 노래를 합창으로 했다.
그 노랜 좀 슬픈 곡이었으나 다행히 그들의 분위기는 좋았다.
그런데 그 후부턴 환자실에만 내려가면 「고향무정 18번 수녀님」이라 누군가 별명을 붙였으며 노래를 좀 잘하는 어떤 분은 나를 위해 부른다며 그 노래를 불러주기까지 했다.
어느 날이다.
『이사벨라수녀님 병실에 잠깐 내려오시랍니다.』
난 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고 막 뛰어 내려갔다.
『왜요? 누가아파요?』
『수녀님 조용히 계셔 보세요.』
난 여문도 모르고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조금 후 난 깨달을 수 있었다.
왜냐면 실 앰프에선 그 노래가 고요히 울려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유 난 또 무슨 일이 난줄 알고 놀랬잖아요. 수녀님 18번 노래를 우리 만듣는 것이 섭섭했어요.』
난 화를 낼 수도 없고 이제 와서 그 노래 내가 싫어하는 노래라고 변명할 수도 없으니 그들은 웃고 나도 웃었다.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과 우리들 사이가 더욱 친밀해 질수 있었기에 난 고향무정 18번 수녀님이라는 말이 싫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때의 그분들은 대부분 천국에 또는 사회에 퇴원을 했으며 아직 몇 분 계시는지 잘 모른다.
추석이 되면 모두 동그랗게 모여앉아 송편을 빚고 여자환자들은 우리와 같이 전병도 부친다.
지금 이글을 쓰는 순간 문득 그곳이 그리워진다.
몇 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같이 생활했던 그 수녀님도…
난 지금 천국에 계신 또는 아직 그곳에 계시는 환자들께 마음속 안부를 전해드리며 우리 모두 시간이나 환경 건강에도 조금도 구에 받지 않는 천국에서 함께 모여 그간 쌓였던 회화를 나눌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릴 뿐이다.
매일 매일 숨찬 목소리로 나마 바치는 그들의 애끓는 성로신공과 묵주의기도…
主님은 누구의 기도보다도 그들의 기도에 귀 기울이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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