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바이올린의 선률이 곱게 울려 퍼진다.
오늘따라 웬지 더 애절하게 들리는 「짚시·바이얼린」-.
문득 저 곡을 무척 좋아했던 김현철씨라는 환자가 생각난다.
소년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병약한 몸에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 곡을 켜곤하던 그-.
아마 지금쯤 하늘나라에 계실가? 아니면 누운 채 임종을 기다리고 계실까?
김현철씨는 그 당시 50이 가까와 오는 남자환자로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고 계셨다. 그때까지도 하루 몇 시간씩 음악 강사로 출강했으며 오는 길엔 우리 진료소에 들려 T·B(결핵)라는 자신의 병을 확실이 깨달은 후부터는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집안에만 박혀있으면서부터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지고 생활에 쪼들리는 그의 부인께서 채소장사를 하며 생활에 나갔었다.
어느 날 이었다. 주사를 맞으러온 그가 입장권 한 장을 건네주며 이번 토요일 모극장에서 연주회가 있는데 유명한 분들의 모임이니 나더러 꼭 가라는 것이었다.
『호의는 곱지만 우리 수녀들은 규칙생활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그런 곳에 갈수 없답니다. 그보다 전 김현철씨의 바이올린 소리가 더 듣고 싶군요』
그 말에 그 환자는 어떤 의무감을 느낀 것일까? 왜냐하면 그는 그 후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맞춰 찾아와 지루하게 기다리는 환자들과 우리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 하곤 했다.
그가 즐겨 켜는 곡은 짚시 바이올린 이었으나 우린 슈베르트의 자장가나 아베마리아 등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하기도 했다.
수녀님들은 많은 아이들과 가까이 계시니 이곡을 좋아할거라며 슈만이 어릴적 동심을 그리며 작곡했다는「트로메라이」를 연주해기로 했다.
그러나 왜일까?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비감에 젖었다.
아무리 경쾌한 리듬을 들려주어도 그것은 흐느끼는 비가로 밖에 들리 않는다.
내가 음악을 들을 줄 모르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이라서 인지는 몰라도 그의 연주에서 감명은 받았지만 한없이 슬프고 애절한 감흥이었다.
아무튼 그는 잠시나마 우리의 피로를 잊게 했다.
그러던 그가 약을 타갈 때가 지났는데 오지 않았다.
계속 치료받던 환자가 말없이 오지 않을 때처럼 궁금한 때는 없다.
언제 한번 방문해 보리라고 생각하며 한 달 두 달 시간만 갔다.
길가의 프라타너스의 잎들이 바람에 나딩구는 어느 늦가을의 저녁인가 싶다.
길에서 그 환자의 딸 선희를 만났다.
『수녀님!』
선희는 나를 보자 내손에 매달리며 그녀의 동그란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수녀님 이제 우리 아빠는 죽나요? 어제 아빠가 바이올린 팔았어요. 나하고 우리 오빠 감기약 사먹으라고요』
난 선희를 따라 그녀의 집까지 갔다. 아, 난 그때 그 환자의 처참한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불두 땔 수 없고 혼자 겨우 누울 수 있는 다다미를 깐 골방에 그는 누워있었다.
문을 열자 확 풍기는 곰팡이 냄새, 어둑한 방안에 뚫어놓은 자그마한 들창으로 넘어가는 화사한 저녁햇살이 반사되어 외로이 벽에 걸린 「베토벤」의 사진만이 유일한 신인 양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하루 종일 누가 감금이라도 시킨양 저 방에서 나오시질 않는답니다.
식구들도 못 들어오게 하고요.
애들 남매가 기침을 한다고 병원에 가보라며 생명처럼 아끼던 바이올린을…』
부인은 울음을 참으며 옆방으로 뛰어갔다.
『어! 수녀님, 오늘은 어쩐 일로 우리 집엘 다 오시고 우리저쪽 넒은 방으로 갑시다』
그는 일어나며 아이와 부인이 사용하는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의 호탕한 목소리임을 증명하는 듯 가장했지만 역시 숨찬 가냘픈 음성이었다.
『이제 나는 끝입니다. 음악도 예술도 장사지내고 이제 남아있는 나의 육신차례지요.
그러나 이제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의 생애 중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할 때는 역시 남을 위해 일했을 때입니다. 부지런히 좋은 일 많이 하세요.
그러면 다음에 건강을 잃었을 때도 좌절하지 않을 겁니다.』
난 그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다. 그렇다 나는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얻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계시든 안계시든 누군가를 위해 봉사할 때 그의 생애엔 좌절이 없다는 것이다.
그 후 난 그의 두 자녀에게 진찰권을 주어 우리 구호병원에서 종합 검사를 받은 결과 정말 결핵으로 판명되어 2년 동안 치료하여 모두 완쾌되었다.
어느 날 그의 딸 선희는 앉아있는 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수녀님 아빠랑 약속했어요. 내가 너 영세할 때까지 살아야 같이 세례를 받을 텐데 하시며 어제부터 약도 잘 잡숫고 식사도 잘 하셔요』
그 후 난 그곳을 떠났기에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난 요즘도 음악을 감상할 때나 또 우리 합주부 아이들이 열심히 바이얼린 연주할 때면 그의 애절한 짚시 바이얼린의 선률을 기억해내고 그때마다 그의 영을 위해 간절히 기도드린다.
본사는 입교수기 일선전교사의 체험기 독자논단 제언 등 독자여러분의 참신한 글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입교수기는 입교등기와 입교당시의 심리적 배경 등을 내용으로 적어 보내시면 되고 독자논단 제언 등은 여러분이 교회에 제안하시고 싶은 말들을 적으시면 됩니다. 많은 투고바랍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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