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지낸 십여년 유학기간에 내가 만나 뵌 교황은 삐오 12세, 요한 23세, 그리고 바오로 6세 교황이시다. 어떤 교황이나 등극하시면 그 시대의 최고 인류지도자시다. 종교를 인정하는 자유진영만이 아니고 저 멀리 철의 장막 속의 지도자들도 교황성하의 한마디 한마디에 극도로 신경을 쓴다. 비록 자기들의 사상적 적이기는 하지만 교황성하의 한마디 말씀은 곧 그리스도를 대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교황의 일거일동은 인류의 초점이 되고 있다.
1945년 세계제2차대전이 끝나고 중공의 주은래는 가톨릭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조직이 있다면 그것은 독일군과 로마 가톨릭 조직뿐이다』라고.
그래서 가톨릭을 분쇄하려면 더 철저한 조직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공은 중공인구의 몇 %밖에 안 되는 소수의 가톨릭신자를 탄압하기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해야한다고 역설했다. 그 당시 교황성하는 돌아가신 삐오 12세이셨다.
삐오 12세와 바오로 6세 교황사이는 각별히 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에피소드에 불과한 말이기는 하겠지만 삐오 12세가 승하하신 다음 차기교황으로 바오로 6세를 선출하려다가 너무나 삐오 12세와 같기 때문에 그 다음으로 선출하자는 말들이 선거단 추기경들 사이에 나돌았다고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한 23세는 그 큰「바티깐」공의회를 소집할 뜻을 제일 먼저 바오로 6세(그때 당시 밀라노 대주교)에게 밝혔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시작은 내가 하겠지만 마무리는 당신이 지어야할 것 같소」하고 웃으셨다고 한다.
아마 요한 23세께서는 자기후계자가 누가 될 것인지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바오로 6세께서는 공의회 중에 돌아가신 요한 23세의 뜻을 따라 2차「바티깐」공의회를 마무리 짓고 공의회가 열어놓은 새로운 교회쇄신 운동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사실 엄격한 시대가 현대와 같이 자유방종의 시대로 변하면서 윤리도덕문제에서부터 교의에 관한 신학에까지 많은 일들이 잠자던 교회 내에 흉수처럼 밀어닥쳤다.
그것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옛것과 새것의 교체를 무리 없게 그리고 시대에 적응해서 어느 것이 참된 진리의 길인가를 가르쳐주신 분이 바로 바오로6세 교황이다.
과감히 현대화를 부르짖고 낡은 것을 시정하면서도 반석위에 세운 그리스도교회의 자세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각국에서 밀려오는 전문·보고 등 외교문서의 회신을 삐오 12세 교황과 그 당시 국무 원장이었던 바오로 6세 두 분이 처리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나고 수만 통에 달하는 교황청 회신을 일일이 재검토했을 때 단 한가지의 오류도 없었다고 교회 역사가 들은 말하고 있다. 실로 놀라운 정신력과 판단력을 가지신 분들이며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나치스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뭇솔리니 같은 폭군들이 협박을 했어도 헛수고였다.
언제나 인류평화와 진리의 사도로써 최선을 다하셨다.
바오로 6세 교황의 일화중 하나를 소개하면 너무나 많은 일로 항상 늦게 주무지는 교황성하께 비서신부가「성하께서는 언제 쉬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교황님의 대답은「교황은 죽고 난 다음 일주일 후부터 쉰다.」고 하셨다는 말이 있다.
교회현대화와 쇄신에 관한 것만이 아니고 오늘날 인류가 가지는 여러 가지 잡다한 문제들로 단 한순간을 쉴 사이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한번은 한국 순례단이 교황성하를 알현했을 때 바오로 6세는 여자들이 입은 한복을 보시고「한국은 필경 아름다운 나라일 것이고 한국 사람들은 진정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매일 몸에 걸치는 옷이 말해준다」고 말씀하시며 반기시드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 대해서는 그의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역사와 문화 특히 현대 발전상을 보시고 놀라운 의지의 국민이라고 치하하셨다. 필자가 바오로 6세를 뵈었을 때도 한국의 교회 발전상을 물으시고 축복받은 국민이라고 치하하셨다. 그리고 순교의 나라인 한국은 하느님의 특별한 가호아래 앞으로 아시아의 꽃이 되리라고 하셨다.
내가 만나 뵌 세분의 교황 중 가장 귀족적인 분은 삐오 12세이시고 가장 서민적인 분은 요한 23세이시다. 그러나 바오로 6세의 인상은 깊은 겸손과 불구의 의지를 가진 분이셨다.
어떻게 보면 전임 두 분의 좋은 점을 한 몸에 지닌 듯 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악수하실 때의 표정은 지극히 다정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말씀하실 때는 칼날 같은 날카로움이 감돌았다.
산아 제한·사제 독신제·평화와 인류복지에 어긋나는 낭비와 전쟁준비에서 오는 불의와 불균형 등에 대해 말씀하실 때에는 추호의 양보도 보이지 않으셨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다.
바티깐의 모든 보물을 팔아서라도 그들을 도와야 된다고 역설하셨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 실로 위대한 교황을 잃었다.
그것은 곧 인류의 손실이다.
우리 모두 애도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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