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미소와 강직한 성품으로 갖은 위험 속에서도 충실히 맡겨진 양떼를 돌보다가 끝내 자신은 늑대의 무리에게 희생당한 착한목자 유재옥 신부(劉載玉ㆍ프란치스꼬)-
그는 6ㆍ25당시 황해도 겸이포본당에서 12년째 사목활동 중이었다. 명동성당이 웅대한 모습을 드러냈던 1898년 경기도 용인군 모현면 오산리에서 출생한 유신부는 25년 6월 사제로 소품된 후 개성본당보좌ㆍ양양본당주임을 지냈다. 검은 테 안경에 항상 미소를 띤 인자한 모습의 유신부는 39년 7월 신설본당인 겸이포본당에 부임하여 신자들과 함께 손수 성전건립 작업 나서는 열성을 보였다.
일제의 교묘한 교회 탄압 속에서 유신부는 41년 12월부터 42년 4월까지 무고한 옥고를 치뤘으나 자신보다는 신자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옥고를 치뤄 쇠약해진 몸으로 사목활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제철소노동자를 비롯, 농촌공소신자들에게 까지 일일이 관심을 쏟았다.
이 민족의 압박에서 해방된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유신 부는 다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양떼들을 돌봐야했다. 48년 공산침략자들이 그들의 본성을 드러내 자신자들은 유신부의 신변을 우려해 피신을 권했으나 그는 한 마리양이라도 남겨놓고는 절대 혼자 피신할 수 없다는 굳건한 태도를 계속했다. 그러나 나날이 험악해 지기만하는 분위기 때문에 신자들은 매일 밤12시까지 사제관을 지켰다.
그런 가운데 6월 25일 제철소 직원들을 위한 새벽5시 미사시간이 지나도 유 신부의 모습이 안보이자 신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밤사이 도둑들은 사제관의 유리창을 부수고 선량한 유 신부를 끌어갔으며 비극의 전란은 시작됐다.
유엔군의 북진으로 다시 모인 몇몇 겸이포본당신자들은 유 신부의 행적을 쫓았으나 한가닥의 희망마저 꺾어졌다.
유 신부는 피납 후 계속된 감금생활 끝에 10월 5일 東海州해변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생매장당한 것이었다. 비보에 접한 신자들은 11월22일 유 신부의 순교현장을 찾았으나 영영 시신은 찾지 못했다.
그 후 25년이 지난 75년 6월 6일 수원 서둔동성당에서는 그동안 흩어져 있던 겸이포본당신자들이 한곳에 모였다. 고 유재옥 신부의 금경축일이기도 한 이날 모인 신자들은 침묵의 북한 교회와 함께 이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을 유재옥 신부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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