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명동성당 사제관에서 故 김정훈 副祭의 遺稿集「산、바람、하느님 그리고 나」의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그 기념행사는 그의 동창신부들이 함께 봉헌하는 추도미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거기에서 生前의 김부제를 내 나름대로 상상하였다.
내가 거기에 참석하기까지 김 부제에 대하여 알고 있던 사실은 사제서품을 앞두고 오지리「인스브룩」의 어느 산에 올라갔다가 불의의 조난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뿐이었다.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을 아름다운 司祭像에 연관하여 생각하면서 산과 바람을 찬미하던 지극히 고요한 영혼의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거기에 전시되었던 50여 점 그림의 소재가 모두 헐벗은 나무와 성당의 첨탑과 아름다운산과 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야만 열매들 맺는다는 내용의 성가가 구슬프게 합창되는 가운데 여덟 분의 신부님이 합동으로 봉헌하는 추도미사를 참례하고 돌아와 그의 유고집을 읽으면서 나는 이세상의 어떠한 죽음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내평소의 신념을 더욱 굳게 하였다. 김 부제의 죽음은 하느님의 어떤 섭리와 계획을 드러내는 것일까?
물론 하느님의 깊은 뜻을 인간이 가볍게 추론하는 것은 너무나 경망스럽고 외람된 일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느님이 행하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것은 또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이기도 할것이다. 김 부제가 그렇게 허망하게 일찍 하느님의 부름을 받은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다.
「山、바람、하느님 그리고나」에 일관되어 흐르는 김 부제의 갈등은 인간의 고독이라고 볼수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끊임없이 여성을 그리워하는 목마른 같은 것으로 표현되어있다.
나는 10여년전에 광주 대건신학대학의 정문 건너편에서 두해를 산적이 있다. 남편이 대건신학대학의 교수로 봉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때때로 신부님의 허락을 받아 강의를 듣기도 했고 세미나에 참석도 했으며 신학생들과 함께 산에도 다녔었다.
그러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기억의 板畵들 사이사이에 끼어 아물지 못하는 傷痕을 남기고 지금도 점점이 피를 흘리게 하는 추억의 신학생들이 몇 명 있다. 그들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도 또는 구수한 전라도 벽촌말로 그들이 방학 때 사귀고 온 순이와 옥의를 이야기할 때 몹시 괴로워했었다. 지금도 그들의 눈빛은 가끔 火引을 찍듯 도와줄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던 그때의 내 아픔을 소생시켜 주곤한다. 순이와 옥희때문에 번민하던 학생들은 그해 방학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후 다음 학기가 지나고 또 그 다음 학기가 지나도 학교에 돌아오지 않았다.
때로는 흰 벽에 외로이 걸린 십자성위로 사랑하던 소녀의 얼굴이 오버랩 되는 아픔을 이기고 사제가 된 분들인들 왜 없을까?
나는 김 부제가 남기고 죽은 일기를 읽고 나서 10년전 그때 만약 순이와 옥희때문에 괴로워하던 신학생들이 김부 제의 유고집을 읽었더라면 필경 그들이 성소를 지키도록 격려해주는 동안의 길벗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여성을 가까이 하지말라는 원칙과 여성을 향한 본능적인 그리움 사이의 갈등 위에 끊임없는 성찰을 가하고 또 살과 뼈를 깎아내는 진통을 유달리 겪으면서 김 부제는 신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불가피했던 이성애를 사제학습의 한 과정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 사랑을 보편적 인간애와 천주애로 지향 계발 발전시키어서 드디어는 주의 수난에 자신을 일치시켜 사랑의 순수화를 체득한 성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고백되어 있고 때문에 그 책을 읽을 무수한 신학생들의 영혼 깊숙히 성소를 지켜나갈 가치의 인식과 각오를 불어넣어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사제서품 기념 상본에 찍으려고 찾아놓은 성경 귀절은『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주시나이까?』였다.
날로 험해가는 이 세상에서 그의 영혼을 세속에 때 묻지 않은 채 깨끗이 걷우어 주셨고 그의 일기를 도처의 신학생들에게 읽게 하여 성소를 지켜가는 사람들의 길벗으로 삼게 하여 주신 데에 하느님의 섭리가 있으셨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나는 우리와 우리의 이웃들이 어느 한순간에 어느덧 김 부제 처럼 세상의 영혼이 되어있을 것을 생각하며 옷깃을 바로 여민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진실을 더 말해야 한다. 남편을 잃고、사위를 잃고 또 이어서 부제 아드님을 잃고서도 눈물을 가슴속에 감춘 채 합장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여인、김부제의 어머니 김자선 여사. 이분은 그 기념식을 끝맺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한 아들을 잃었지만 동창 신부님들을 아들로 받았고 아들 하나만을 사랑하여 깨우치지 못했던 사랑을 이제 많은 사람들과 나누게 되었읍니다』그러나 참으로 김부제의 어머니는 겉으로 보여주는 평정을 내면으로도 누리고 계실까? 나는 이 물음에 대답을 보류해야 한다. 시련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고통도 사랑의 은혜로써 주시는 하느님과 내 몸이 백번 죽더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 모정의 한 가운데에 서서 나는 우주질서의 무한한 신비 앞에 언어를 상실당한 벙어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