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딸들과 함께 베토벤 심포 9번을 듣다가 내가 물었다. 철학적인 대답을 해보려고 주저하는 언니들 사이에 조그맣게 끼어 앉아있던 막내딸이『베토벤은 내 피아노소곡집에 있어요』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일곱 살 된 딸의 능청스런 대답이 대견스러워서 다시 또 질문을 건녜 보았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지금 어디계실까?』이번에는 막내가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천당에 계시겠죠、뭐』하고 대답하였다.
그것은 베토벤이 大作을 남겼는데 반하여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남겨주신 것이 없다는 비판을 막내딸이 순진스럽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하고 나는 생각해 보았다.
사업가이되 또한 음악애호가이셨고 근검절약하는 경제인이되 또한 고학생들의 숨은 후견인이셨던 나의아버지는 해마다 예술제를 베풀어 예술가들을 후원하셨지만 손수 예술작품을 세상에 남긴다는 것은 꿈도 꾸어보지 않으셨다. 그러니까「엘리자를 위하여」를 칠 때마다 베토벤과 함께 호흡하는 내 막내딸이 이미 가버리고 없는 사람으로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정직한 일이다. 그러나 그분의 딸이었던 나는 내 막내딸과 심정이 아주 다르다. 아버지가 나에게 베푸신 사랑의 추억을 통하여 내가 살아있는 순간까지는 아버지도 나와 더불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6ㆍ25사변이 일어나기직전의 어느날 저녁 아버지는 나를 예쁘게 단장시켜서 계정식선생의 바이올린 연주회에 데리고가 꽃다발을 증정하게 하셨다. 그날 아버지는 내 머리를 여러번 빗겨주셨다. 그리고『머리숱이 너무 적어 큰 걱정이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하시던 때의 그 자애로우셨던 표정과 내 영혼에 수놓여진 그 눈빛. 이것은 내가 내안에 계신 아버지의 現存을 인식하기에 조금도 손색없는 생명의 샘이 되어 나와 함께 있다.
오늘 나는 금빛 은행잎이 아스팔트 포도를 노란양탄자처럼 폭신하게 덮은校庭을 거닐다가 문득 떨어진 잎새 하나를 집어만지면서 낙엽과 人生을 오버랩 시키게 되였다.
나는 자문자답하였다. 人生은 단지 낙엽과 같은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 다른가? 사람은 죽어서 모두 성인이 되어 영원히 산다. 어떻게 감히 성인을 바란단 말인가? 아니다. 성인의 길은「어떻게 감히」라는 전제로 생각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의 피와 살이 바로 성인이 되는 가장 완벽하고 유일한 길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금도 인간을 도구로 삼아 창조사업을 계속하신다고 나는가끔 생각한다. 위대한 음악과 문학과 미술을 내신부들. 헨델과 바하와 단테. 미케란제로와 다빈치와 라파엘、이들이 이룩한 大業에 하느님이 직접 관여하지 않으셨으리라고 상상할 수가 없다. 흔히 천부적인 재능이란 말을 쓴다. 이 말을 곧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영광을 받은 재능이라는 뜻이 아닌가? 그래서 어네스트 백커와 같은 사람도「참다운 천재라면 천만년 후에 그 작품이 그 작가의 생명을 인류 앞에 증명해줄 수 있는 작품만을 써야한다」고 말하였다. 큰 재주를 받은 사람은 聖業에이르는 大作을 낳기 위해 全心과 전 생애를 바쳐야한다. 大作을 낳기 위해 힘들고 외롭게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 큰 재주를 받은 닦아간다. 우리가 배운 그리스도는 권세와 부귀와는 인연이 전혀 없다. 외롭지 아니하고 풍족한 생활 속에서는 大作을 낳는 성인의 길을 걸을 수 없다. 그러면 이름 없이 피어난 한 송이 들꽃처럼 피었다가지는 우리네들、재주 없고 범상한 사람들은 어떻게 성인이 되는가? 베토벤교향곡이 베토벤의 생명을 증거 하듯 하느님의 작품인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를 증거 하는 일을 함으로써 성인이 된다. 설날이면 가난한 이웃 아주머니에게 곡식을 퍼주시던 옛날의 어머니、고아들과 고학생들을 숨어서 보살피시던 나의 아버지、
그들은 작품을 남기는 일과는 전혀 인연이 없으셧지만 이웃사람들과 훈훈한 인정을 나눔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사람 속에서 하느님의 마음을 보도록 그言行에 인자하셨다. 때문에 특별한재주가 없으셨던 나의아버님 어머님 같은 분도 성인이 되어 하느님과 함께 살아계신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바로 저 사람의 처지에 있다고 가정하고 남의 문제를 바라보면 이 세상에는 고통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모두들 고독하다. 이때 순후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그 상처를 위무함으로써 하느님의 存在를 이웃에게 증명하면 그것이 바로 성인의 길을 걷는 것이 된다.
아이들은 낳으면 내생염이 연장되는가? 아이들은 기껏 나보다 50년 정도를 더 살면서 내 생명을 연장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참으로 영원히 사는 길은 성인이 되는 길이다. 사람은 예외 없이 누구고 다 죽는다. 죽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게된다.
영원히 사는 길에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큰 재주를 받고 태어나 하느님과 함께大業을 이룩하는 길이고 또 하나는 이름 없이 태어나 따뜻한 人情으로 이웃사람의 가슴속에 하느님의 存在를 인식시킴으로써 성인이 되는 길이다. 이름 난 유명성인과 이름 없는 무명성인의 차이야 있겠지마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죽으면 우리는 모두 성인이 되어 영원히 살게된다. 이러한 신앙이 없다면 이 쓸쓸하고 억울한 세상을 어떻게 살겠는가? 죽어서 하느님과 一體가 되지 않는 人生은 하느님이 한명도 이 세상에 내보내실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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