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이룩해나아가는 표지로서 오늘도 인류의 길잡이가 되어있다. 계절의 리듬에 맞추어 적절하게 전례를 통해 인간을 하느님의 은총에 응답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전례의 주년에 첫 시작이 되는 대림절을 맞이하면서 교회가 일깨우고자 하는 오늘의 대림절의 의미는 무엇이겠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자한다.
기다림이란 무슨 뜻인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기에 행복의 조건을 받아들이고자하는 주관적인 갈망을 기다림이라고 생각해 본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는 것은 자연법칙에 근거를 둔 기다림이다. 농부가 철을 기다리는 것도, 가을의 열매를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다.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거나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것은 약속에 의거한 것이다. 보너스나 승진 같은 것을 기다리는 것은 기다리는 사람의 공로가 인정되는 한 가능한 것이다. 이밖에도 호기심이나 막연한 기대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행복의 조건이 주어지거나 증진된다고 하는 한 기다림이란 훌륭한 희망의 덕(망덕)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완전하심같이 완전해져야할 인간이라면 본래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되어져가는 인간일 것이다. 인간은 자력(自力)으로는 자족(自足)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처음부터 타자(他者)의 도움을 기다려야하는 존재이다. 이것을 긍정하는 사람은 복음이 말하는 복된 자이다.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 미천한 사람, 어린이와 같은 사람은 행복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런 희망이 있는 한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애당초 허무였고 허무에서 창조된 인간은 조를 지음으로써 또 다시 허무로 돌아가야 하는 절망 속에 빠져들어 갔었다.
인간이 고의로 창조주로부터 등을 돌렸으니 창조주께 다시 희망을 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되찾을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됨이니 곧 창조주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음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로마서4장18절)
하느님의 약속은 그분의 호의에서 나온 뜻밖의 선물이었고 인류는 다시금 희망을 갖게 되었다. 단 조건이 있다면 거절할 수 있었던 자유를 선용하여 희개하고 약속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으면 희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진실한 분이시기에 믿을 수 있고 하느님은 성실한 분이시기에 희망할 수 있는 분이다.
항상 좋은 것으로 채원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면, 모름지기 스스로 풍요로우신 하느님 앞에 겸손하고 신뢰하는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스스로 안다고 하고 똑똑한체 하는 사람에게 보다, 오히려 철부지 어린이에게 좋은 것을 나타내보이시는 하느님은 배고프고 목말라하는 사람에게는 좋은것으로 배 불리시고 슬피우는 사람에게는 당신의 위로로 행복하게 해주시니 우는 아기에게 젖준다는 속담 그대로이다.
이렇게 행복을 찾는 인간은 숙명적으로 기다리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위해 근원으로부터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바로 영원한 하느님의 생명이다. 하느님은 오로지 당신이 자비하시기 때문에 공으로 생명의 은총을 약속하셨다.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된다.
『하느님 아버지, 당신을 위해서 우리를 내셨기에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불안하나이다』라고 고백한 성아우구스띠누스의 말은 하느님이 찾아오심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의 만남을 과연 오늘의 인간은 절실하게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은 변해도 인간의 실존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사실은 더 절실히 바라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웅켜쥐듯이 오늘의 인간은 잡다한 수많은 것에 매달리고 웅켜쥐면서 공허를 메꾸려고 하는 이것이야말로 인류가 자연종교를 수없이 만들어온 것과 같은 차원의 몸부림이요, 발돋음이라고 여겨진다.
하기야 이런 발돋음은 그래도 영원을 향한 첫걸음일수도 있다고 긍정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나마 그런 근시안적인 것들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산다는 것은 그저 그런거다」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더욱더 현대인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체념과 권태에 빠져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미 삶의 의미라는 것에는 무감각해지고 자포자기와 절망으로 인해 동물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희망이 없는 곳에서는 사람의 능력도 무기력해지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성령을 거스르는 사람들이기에 이 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나 구제 불능의 불행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는 악마적인 유혹에 시달리며 희망을 상실해 가고 있는 이시대안에서 희망의 지표가 되어야 하겠다. 전에도 계시고 오늘도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면서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믿음으로써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찾아오시는 분을 기다려야 하겠다.
하느님은 진실하시고 좋으신 분임을 믿는 것이, 또 그분의 약속은 성실하게 지켜진다는 기대를 갖는 것이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지금의 이 은총을 누리게 되었고 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에 부풀어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고통을 당하면서도 기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강한 끈기를 낳고 그와 같은 끈기에서 희망이 솟아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로마5장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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