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인류를 당신과 합일시키고자 어떤 방법을 택하셨는가? 인간을 천주성에 참여시키기 위해서 하느님은 인간성을 취하셨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예수님은 인간의 육체적인 부조리(고통)에 크게 관심을 쏟으시어 절룸발이 귀머거리 장님등을 모두 성하게 고쳐주셨다. 배고픈 사람들의 걱정을 먼저 하시어 빵을 많게 하여 배불리 먹이셨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켜 기쁨을 안겨주었다. 물론 이 같은 인간적인 배려는 좀 더 차원 높은 인간의 근원적인 해방을 알리는 서곡이요 징표였다.
중풍환자를 일으킴으로써 죄의 용서를 증명하셨고 비록 썩어질 빵이었지만 기적적으로 많은 군중의 배고픔을 없애신 것은 생명의 빵을 약속하는 보다 큰 구원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렇게 하느님은 자연을 파괴하기는 커녕 완성시키면서 초자연의 구원을 마련하셨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서 영생을 얻는대 기여하도록 함으로써 세상 재물을 다루는데 충실해야 참된 재물을 하느님이 맡기실 것이(루까16장)라고도 하셨다.
하느님은 인간과 인간의 범죄로 멀어진 모든 조물과의 화해를 위해서 몸소 인간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 친숙해지는데 인색하지 않으셨다.
친구를 얻기 위해 먼저 친구가 되어주셨던 것이다.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바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분이 어떤 방법으로 찾아오시는지를 잘 관찰하여 거기에 맞는 자세로 기다려야할 것이다. 예수님은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시고 죄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으시며 약자들의 편이 되어주셨다.
또 그분은 죄와 죄를 뉘우치지 않는 위선자에 대해서는 조금도 양보가 없지만、방황하는 죄인을 회두시키는데는 별의별 양보를 다하신 분이었다. 정의보다는 자비를 앞세우셨고 심판보다는 용서를 앞세우셨다.
『내가 너희를 이렇게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그렇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으로 보아 우리도 예수님이 취하신 방법에 맞추어서 예복을 준비하고 등불을 켜들고 깨어 기다려야 하겠다.
숨어계시는 하느님이 당신을 드러내시기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과 슬퍼하는 사람들에게、또 온유한 사람들과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또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또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에게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인생의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스럽게 찾아 나서야하겠고 보잘 것 없는 자기의 실존을 그대로 수긍하는 겸손을 지녀야하겠다.
이렇게 열려진 마음으로 예복을 갖춘 사람들은 서로가 믿음의 등불을 밝히고 같은 희망으로 모여 깨어있게 된다.
놀랍게도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 가운데에 이미 주님이 와 계심을 알게 될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크랴.
소박하고 단순한 사람들 사이에 담겨진 사랑의 불은 처음에는 겨자씨나 누룩 혹은 소금처럼、나중에는 빛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번져나가는 것이다.
구원을 기다리는 개개인은 말할 것 없고 이미 확보된 이 구원을 선포해야 하는 오늘의 교회도 주님이 기꺼이 함께 하실 수 있는 합당한 자세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광대와 불타는 마을」의 비유가 생각난다. 곡예단에서 공연 중에 불이 난다. 광대는 급히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와서 불을 끄는데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사람들은 구경꾼들을 끌어들일 어리광이라고 여겨 도모지 움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얼굴에 덮어쓴 광대탈을 벗어 버리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사람들에게 달려가 호소했던 늘 그런 낭패는 없었을 것이다.
교회가 인간의 말과 천사의 말까지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고 온갖 심오한 진리를 깨달았다 하더라도、더욱이나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같은 희망을 가진 교회의 사람들안에 사랑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서양이 비그리스도교화가 되어간다는 것은 우연한 사실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많은 성당과 훌륭한 신학자들 또 나면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교회 안에 사랑이 식어갔을 때 거기에서는 그리스도를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던 것이다. 사도 베드로에게 교회의 사목권을 예수님이 맡기실 때 단한가지 사랑의 조건만을 내세우셨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 양을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또 『당신들이 서로 사랑하면 이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당신들이 나의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명백히 교회의 성격을 규정하셨다. 과연 겨자씨 같은 작은 초대교회는 크게 성장할 조짐을 보였으니『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각자의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한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이고 집집마다 돌아가며 빵을 나누고 기쁘고 순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했던 것이다』(사도2장43)
하느님은 사랑을 가능케 하는 조건하에서만 당신이 함께 하심을 드러내신다. 그러므로 오늘의 교회가 찾아오신 하느님을 맞갖게 영접하려면、또는 이미 함께 계시는 주님을 만민에게 증거해보일수 있으려면 예수님이 보여주신 인간적이고 신적인 사랑을 교회도 누리고 또 보여줄 수 있어야만하는 것이다.
빈 무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해 보였듯이 세세에 다스리시고 왕 하시는 주님을 세상에 증거해보일수 있는 길은 교회는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에 봉사하는 것이 곧 가난해지는 것이다. 거기에서 하느님은 당신을 드러내 보이신다.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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