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들 가운데 성탄축일을 처음으로 로마에서 지낸 것은 예수께서 돌아가신 후 3세기가 지난 3백30년경이었다. 그 이전에는 교회에서 축일 하나만을 지냈다. 즉 매주(주일) 매해(부활축일) 신자생활을 재생시키는 주님의 부활만을 기념하였다. 그러니까 3세기동안 성탄축일은 없었다. 우리는 354년 교회달력 속에서 처음으로 이축일을 발견한다.
▲왜 12월 25일에?
성탄을 어떻게 축하하게 되었는가? 전례역사전문가인 삐에르 주넬 신부가 우리에게 말한다.
『로마에서 12월 25일에、이집트에서는 1월 6일에 거행한 이교도들의 동지(冬至)축일에 대항하기위해서 해마다 이날을 기념하게 된 것이다』
콘스탄띤 황제가 그리스띠아니즘에게 민교자유를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축일이 이교도축일에 겹치는 것을 좋게 보았다. 321년 그는 주간의 첫째 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태양에게 봉헌된 이날을 주의 날(주일)이 되게 하였다. 마침내「정복되지 않는 태양」의 축일인 12월25일부터 밤이 짧아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그날이 그리스도 축일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참다운 태양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 예수가 12월 25일에 참으로 나셨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복음서는 여기에 대해 아무런 말도 없다. 그러므로 성탄은 이미 존재했던 죽일에 합친 것이오、또 거기 새로운 뜻을 준 것이다. 사람들이 긴 밤이 끝나는 것을 축하했던 동짓날、그리스도 신자들은 인류로부터 어두움을 몰아내신 그분을 축하하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두개의 축일이 결합된 것이다. 즉 인간에게 이렇듯이 매력적인 자연의 리듬속에 그 원천을 두었던 축일、또 영원히 생명을 연장시킨 빛의 사건을 기념했던 축일이 결합된 것이다.
▲속된 성탄과 그리스도적인 성탄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은 동지를 잊어버렸다. 예수께 대한 축하가 옛 이교도의 축일을 대치하였다. 이 축일이 그리스도께 주어지기위해 빛의 상징으로 독점되었다. 이렇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주제(主題)가 나타나게 되었다.
1223년 처음으로 아씨시의 성프란치스꼬가 아주 가난하게 만든 말구유가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아기예수가 어린이들을 축하하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어린이들의 축일이 겨울을 둘러싸고 있는 집의 고요속에서 가정의 축일이 되었다. 이렇게 오늘날 진열장과 광고가 선물과 윤택한 식사를 풍부히 초대하고 있다. 그러나 성탄이 속화되었다. 오늘날 속된 축제기분이 어린이들과 가정과、잘 장식된 식탁의 기쁨을 축하하는 이날 대신 판을 치고 있다. 두가지축일이 겹쳐있으나 많은 우리시대 사람은 그리스도교적 추억은 이축일의 충격밖에 안된다.
밤미사는 밤샘놀이에 불과한 것이 되어버렸다. 밤거리와 백화점을 방황하는 우리는 12월 25일 성당에 가지 않는다.
▲장래를 위한 기념일
만일 우리가 성탄축일의 역사를 가까이 바라본다면 하나의 새로운 놀라움이 우리에게 온다. 사실 4세기에서는 먼저 과거의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이날은 장래를 맛보는 것이었다. 성탄은 역사가 끝나는 날 주님이 두번째 오시는 것을 겨냥하였다.
성탄이 이전에 예수의 탄생에 관해 중점을 둔 사상은 새로운 개념이었다. 처음에는 이축일이 천국과 오실 왕에 대한 기대로 지배되었다.『오소서주예수여』(묵시록22ㆍ20)로 기대한 탄생은『하늘을 쪼개시기 위하여』(이사야 64ㆍ1) 다시 오실 또 변형된 세상의 천상 태양처럼 올라오실『날이 새기 전에 나신』평화의 왕의 탄생이었다.
그러니까 장래 사건의 기념일이다.
유대인의 기대와「베들레템」에서의 탄생을 재생시키기는 불가능 할 것이다.
대림절로 앞서고 공현축일이 따르는 이축일은 장래 오실 하느님을 겨냥하고 있다.
영광의 왕은 이 세상 마칠 때에만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성탄전례는 이세상은 우리가 영구히 머무를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성탄전례는 이렇게 방향을 바꾸어주고 길을 떠나게 하고 현재를 거부하고 마지막 날 우리가 가장 사랑하온 그분이 솟아오름을 볼 지평선을 나타낸다.
해마다 성탄은 이 세상은 아직 어두움 속에 있으며 또 언젠가 하루는 그분이 영원히 다시 오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다.
성탄은 하느님이 나타나실 때까지 역사의 밤중을 걸어가는 하느님백성의 축일이다.
▲序曲같은 축일
성탄은 오늘날 사람을 위한 희망의 노래요、기쁜 소식이다. 성탄은 낭비하는 우리사회에 가난한자들의 비결처럼 우리가 가지고 가는 하나의 소식이다.
이 소식은 하느님께서 피비린내 나는 십자가의 길을 거쳐 영광으로 넘친 빠스카를 열기 위해서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오셨다는 소식이다. 첫날부터 그분은 이미 고통의 사람이었다. 인구조사를 위한 위정자에 의해 길을 떠났으며 가난한자들을 위해 자리가 없었던 여관에서 쫓겨나고 그 후 예루살렘 군인들로부터 국외로 추방되는 등、예수는 나실 때부터 그의 짧은 생애의 비극적인 종말을 벌써 앞당긴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비로우신 분이기도 했다. 가난한 백성인 목동들이 그분에게 왔고、외국 박사들도 멀리 있고 분열된 인류의 대표자로서 그분에게 왔다. 또 요셉과 마리아는 생활한 요람이었다.
▲오실 우리아기
해마다 성탄 때 태양이 지평선을 넘어 올라올 때 기뻐하는 인류의 축일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 축일을 중심으로 혹 그 축일 옆에 다른 하나의 축일이 빛을 내게 한다. 이축일이예수의 생활의시작과 또 언젠가 하루 결정적인 세상을 빛낼 마지막 태양의 여명(黎明)을 축하하는 것이다. 예수의 빠스카요、변모된은 인류의 빠스카가 올 것이다. 이 빠스카가 매일 우리를 재촉한다. 만일 우리가 이 축일의 불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이 아기의 기쁨 속에 들어 갈수 있다. 그리고 인류 안에 하느님의 탄생과 하느님 안에 인류의 탄생이라는、다음에 오실 천국에서의 그분의 기쁨 속에 우리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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