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기 교부 시대의 영성
4) 세례의 영성
『여러분은 물 안으로 들어가서 죄의 더러움에서 깨끗하게 씻겨져 새로운 찬가를 부를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그러므로 이전에는 악령의 모방자였던 속인이 세례를 통하여 로고스를 본받아 빛의 자녀가 된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영성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생명을 주시는 능력과 그 효력을 발휘하시는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셰례의 은총이다. 로고스는 마치 포도나무가 천천히 자라나 잎을 내고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영혼 안에서 세례 은총의 힘으로 모든 수덕적 행위를 하게 하여 덕을 쌓게 한다. 신앙인들은 세례의 서약을 통해 사탄의 세력을 물리치고 세례의 은총을 유지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는 영혼의 남편이 되었으므로 세례받은 이는 그분을 본받아야 한다. 여기서 세례의 삶을 성실히 살아 덕을 닦아야 한다는 수덕사상이 등장한다.
세례에서 특별히 두 가지 주요한 신심이 제시되었다. 그것은 진실한 사랑의 실천과 순교의 준비였다. 사랑이란 세례를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총을 이웃 사람들에게 실천하는 것이고, 순교의 준비란 세례의 서약에 의해 순교의 기회가 올 때 기꺼이 『예』라고 응답하는 신심이었다.
이 사상을 계승한 학자는 카르타고의 주교 치쁘리아노(258년 순교) 성인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세속을 포기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결단으로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모방하기로 서약한 그리스도인은 세례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본받기로 노력하고, 혹시 박해가 오더라고 그것을 감수하는 것이었다.
세례성사는 공동체 안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세례받은 이는 마치 착한 목자에게 속한 양처럼 하느님의 집에서 영예롭게 된 그 고귀한 지위를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서약을 하였다. 그러므로 비록 박해를 당하더라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 서약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신심이 제기되었다. 여기서 순교에 대한 신심이 자연스럽게 등장하였다. 이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완성에 이르는 두 번째 신심이었다.
5) 영성의 한 형태인 순교
영지주의적 영성을 지니고 있던 오리게네스는 영성의 최고 형태는 순교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레네오 성인도 이 점에 있어서는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군교의 권면」이라는 저서에서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제자란 그분을 따라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진정한 영성에는 고통과 분리될 수 없는 극기를 전제해야 하는데, 초대 교회 당시에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지 죽음까지도 예상하는 것이었다. 이런 까닭에 금욕 수행자와 순교자는 참된 영성인들로 간주되었다.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방을 실천하는 가장 좋은 신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2세기부터 여기에 관한 설교가 교회 안에 중요한 주제로 대두되었다.
안티오키아 성 이냐시오는 순교와 그리스도 모방의 연관성을 이미 전제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참된 추종자이다』그분의 고통을 보면서 그분을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그분의 생명을 누리지 못한다.
『세상이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때 나는 참된 사람이 될 것이다』2(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4,2).
『동전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주님의 동전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의 동전입니다. 둘의 표시는 서로 다릅니다. 신앙이 없는 자는 세상의 동전을 취하고 사랑의 자극을 받은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동전을 취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고통을 본받아 그분을 위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마그네시아인들에게 보낸 서간 5,2).
스미르나의 성 뽈리까르뽀의 생애를 기록한 저자는 그리스도와 그분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순교자의 유사성을 엄격히 제시하고 있다. 이 저자는 순교자들을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들일 뿐 아니라 모방자들이므로 그들을 공경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177년경 순교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갈리아 지방의 비엔느와 리용의 공동체들은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그들을 찬양하였다.
『베띠오 에빠가토는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였다. 그는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에나 따라가다가 순교로써 어린양의 죽음까지도 따라갔도다』라고 찬양하였다.
순교자 치쁘리아노 성인은 양떼들에게 인내와 고통의 스승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을 의무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분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이들은 누구나 고통 당하신 그분을 본받음으로써 그분의 동료와 동업자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순교록은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순교라는 점을 한결같이 역설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고문을 당하고 사자의 이빨에 몸이 물어 뜯길 때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용감하게 죽어간 순교자들은 무아의 경지를 맛보았을 것이며 고통을 느끼지 않앗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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