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는 신앙고백이 예수 성탄축일의 내용이다. 성탄의 신비야말로 하느님의 소원과 인류의 소망을 함께 충족시키는 위대한 사건의 시작이다. 초자연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가 함께 이룩하는 대 드라마의 서곡이다. 하느님의 전능과 공의가 첫 창조 사업을 했다면 둘째 창조사업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시작했다. 첫 창조 사업은 인간의 동의 없이 당신의 권능으로 행사했지만 둘째 창조사업은 인간의 동의를 얻어 시작했고 또 이루어 가시는 공동 작업이 되었다. 하느님의 모습 따라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재차 인정되고 보다 깊이 구현되는 생활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 창조 때에는 인간이 하느님을 주님으로 받들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고자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공의는 인간을 고립시켰고 독립된 인간은 불행해졌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을 거부하고 떠나가는 인간에게 비로소 처음으로『너 어디 있느냐?』하고 인간의 존재를 확인하며 부르셨다.
즉 하느님은 독립된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시고 용서하는 사랑(자비)으로 재차 내적 창조사업을 시작하셨다.
먼저 하느님은 약속의 때와 그 약속을 성취하실 때를 정하시고 충실하게 이행하셨다. 그분은 인간에게서 무엇을 받으셨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인류에게 너무나도 큰 것을 약속했기 때문에 인류에게 빚진 분이 되셨던 것이다.
하느님은 영원한 구원、천사들과 함께 누리는 끝없는 축복의생활、시들지 않는 유산、영원한 영광、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그리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로 인한 죽음의 두려움에서의 해방을 약속하셨던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 엄청난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글로써 계약을 맺으시는 것 뿐 아니라 당신의 성실성의 중재자로 어떤 왕이나 천사가 아닌、당신의 아들을 내세우셨다. 하느님은 당신아들을 통해서 당신이 약속하신목적지까지 인도할 길을 가르치고 보여주셨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아들을 그 길을 가르쳐주는 분으로 보내주신 것으로만 만족치 않으시고 아들 자신이 길 자체가 되게 하시오 그분의 안내로 그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은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약속하신 것을 성취하셨던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의 생명으로써만 영원한 행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하시려고、오늘도 교회 안에 강생하시어 함께 머물러 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 위대 하고도 고마운 사랑을 깨달아 믿게 될 때 인간은 참으로 회개할 수 있고 새 생명으로 다시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타인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대지와의 교환으로 육체의 생명이 성장하고 인간과의 교류에서 인간의 정을 느끼며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믿음을 바탕으로 연결되어 상대방의 필요에 서로가 전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할 때 하느님을 닮은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이 같은 상호사랑의 관계가 하느님에 의해서 하느님과 이루어지는 것이 곧 인간의 구원이요 행복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더 뚜렷해지겠다.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면 어떤 인간일까. 뭐니뭐니해도 외롭게 고립된 인간이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관심을 쏟을만한 의미 있는 대상을 찾을 수 없다고 느낄 때、이 마음과 마음이 단절된 상태야말로 결정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죄야말로 모든 분열과 단절의 원인이다. 죄를 범한 당사자 안에서 이미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외적으로는 형식상 관련을 맺고 있어도 내적으로는 단절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외적으로는 형식상 관련을 맺고 있어도 내적으로는 단절된 상태가 되는 것이다. 하느님에게서 마저 등을 돌리는 범죄라면 육신은 말할 것 없고 영혼도 완전 고립되어 죽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범죄로 인한 단절과 죽음에서 풀어주시려고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기까지 하셨고 당신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뿐 아니라 죄의 결과인 죽음마저 물리치시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하셨다. 범죄로 자초한 인간의 불행을 송두리 채 없애시고자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죽으셨던 것이다. 아무도 원망할 수 없도록 하기위해 그야말로 억울하게 하느님한테 마저 고립되는 죽음을 택하셨던 것이다. 인간은 살기위해서 세상에 태어나지만 하느님은 죽기위해서 세상에 강생하셨다. 하느님의 강생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함께 생각해야만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하느님은 당신의 강생으로서 시작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당신의 죽으심과 부활로써 완성하셨다. 예수님의 성탄을 기리는 오늘、우리 신자들은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마음을 당신의 사랑으로 지배하셔야만 하는 주님이심을 진정으로 고백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사랑으로 믿는 이들의 마음이 채워지고 같은 사랑으로 살고자 하는 이웃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성탄축일을 축하하는 교회의 의도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기 위해서 은총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기도와 성사에 자주 접하는 생활로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우리마음에 강생하시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도바오로 처럼『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안에 사신다.』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계속 탄생시켜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마리아처럼 겸손하고 순종하는 마음으로「하느님이 홀로주님」기이에「주님의종이오니 당신 뜻대로 하소서」하는 생활 자세를 지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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