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명동성당 언덕길을 남녀 대학생 5ㆍ6명씩이 1주일에 한 번 씩 오르내린 일이 있다. 서울대교구 사목연구원이 주최한「화요 문화 강좌」가「오늘을 만하는 문학」이란 주제를 내걸고 화요일 저녁마다 연설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연사들은 모두 신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요즘 한국 문단에서 소장층으로 활약하고 있는 소설가ㆍ시인ㆍ평론가들이었다.
우리 교회 안에「가톨릭 문우회」도 있는데 왜 비신자 외부 문인들이 교회행사에 10명이나 초청되어 10주간이란 가을 한 철을 법석을 떨게 되었을까.
필자 자신은 가톨릭 문우회의 총무간사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 화요강좌 주최 측이 내게 와서 연사로 초청할 문인들에 대해 의논하였다. 가톨릭 문우회에도 문단적으로 중진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었다. 그런데 주최측이 의논을 해 왔을 때、나는 실토하거니와 비신자 일색으로 연사 진을 소개하게 되었다. 나이나 교우관계로 보아 나 하나 쯤 그 연사진에 끼어도 어울릴만 했으나 사양하였다.
그냥 사회 사람들로 구성하여 그들이 교회행사에서 주역을 맡을 수도 있다는 걸 보고 싶었다. 실상 오늘날 교회가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모든 선의의 인간들」을 신자나 마찬가지로 여기는 점이 있다.(사목헌장 22항) 그들이 교회 구내에 드나드는데 스스럼없어지고 또 그들의 연설을 들으러 오는 똑똑한 학생들이 수백명씩 명동성당 언덕을 오르내리게 될 것이 즐거웠다. 예측이 들어맞았고 행사는 대성공이었다. 학생 청중들은 조그만 액수의 입장료까지 내고 들어와서 노트를 펴들고 강연 내용을 열심히 필기하였다. 주최 측은 수지맞는 행사를 치룬 셈이다.
그 강좌에서 연사들은 무슨 얘기를 했을까. 그들은 주로 오늘의 한국 문학과 사회현실과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청중이 많았다. 학교에서라든가 다른 자리에서는 젊은이들이 그런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면 이번 행사 내용이 무모한 것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본연의 자질과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고 완성 시키는 데에 요구되는 인간의 과제와 체험을 표하려고 노력하며、역사와 세계 안에서의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인간의 불행과 기쁨、필요와 능력을 밝혀주며、인간의 보다나은 운명을 개척하려고 노력한다. 이리하여 문예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여러 모양으로 표현된 인간 생활을 향상 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문예인들 스스로의 노력이 교회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느끼고 정당한 자유를 누리며 보다 쉽게 신자단체와 교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사목헌장 62항)
이것이 제2차 바티깐공의회를 계기로 교회가 표명한 문학예술에 대한 자세이다. 여기에서「문예인들」이라고 한 것은 사회의 일반 문인들을 총칭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신자단체와 교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교회가「가톨릭 문화」이란 전제를 붙이지 않고 일반 문학예술의 중요성을 지적한 내용은 교황청교서「일치와 발전」속에도 들어있다.「한 시대의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역사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도 연구해야한다. 사상의 개념적 서술보다 오히려 문학과 예술작품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성격과 열망과생각과 감정을 더욱 예리하고 명확하게 더욱 깊고 상세하게 알려주기 때문이다.」이렇게 되어있다.
오늘의 가톨릭 문학인은 교회의 이러한 가르침들을 잘 이해해서 사회의 유능한 문학인들이 교회와 사귀고 협조관계를 갖도록 주선해야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결국 사회에서 중요한 것이면 무엇이나 교회에도 유용한 것이다.
매사에「가톨릭」이라는 또는「그리스도교」라는 렛델을 붙이는 것은 실상 그만큼 교회를 세상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
가톨릭문학인들이 종래에 탐구해온 모리악ㆍ베르나도스ㆍ그레암ㆍ그린 등의 문학은 그것대로 고전적인 가톨릭문학으로 여겨 탐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가톨릭 문우회」같은 모임도 신자들끼리 나눌 수 있는 보다 은밀한 친목과 연구의 모임으로서 유익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 가톨릭 문학인들이 관심을 두어야 할 것은 가톨릭문학이 가톨릭문학으로서만이 아니라 세속의 문학으로서도 모범이 되고 독자를 많이 갖는 참신한 문학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교회와 사회일반 문화사이의 정당한 소통관계를 주선하는 중개역도 말아야할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세상 안에 현존케 하는 일을 돕는 것이고 하느님의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밝히는 일에 동참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 문학인의 입장은 가톨릭문화인 전반에 마찬가지로 해당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가톨릭저널리스트、가톨릭 연예인、가톨릭 미술가들이 각기 단체를 갖고 있으며 친목과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친목과 대내적 활동에 머무는 형편이다. 특히 가톨릭 저널리스트 클럽은 포괄하는 범위도 넓고 또 사실을 사실대로、진실을 진실대로、세상에 증언해야 할 본분을 지니고 있으니 오늘날 우리 사회와 같은 여건에서 어려움이 많게 된다. 그러나「일치와 발전」교서는「인간의 생각하는 자유와 병행하여 알고 알릴 권리가 있다.」고 가르치며「곧잘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의 박해를 무릅쓰고 때로는 목숨의 위협마저 받으면서 땅 끝까지 사실대로의 뉴스를 전하려고 수고하는 기자들을 교회가 보호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들、예술의 기능과 언론의 기능 등에 관해 2차 공의회 이후 교회가 가르치는 실천 원리는 자연법적 근거위에서 밝혀주는 산 신앙의 지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복된 짐을 진 가톨릭 문화인、지식인들의 활동전망은 실로 너무 넓게 열려져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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