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가시던 날엔 온 누리에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읍니다. 슬픔에 젖은 눈에 들어오는 倉洞의 산과 들은 눈에 덮인 흰 세계 였읍니다. 순수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풍경은 天上에서 흰 꽃잎을 뿌려 선생님을 맞이하는 것 이었읍니다.
그것은 선생님의 순박하시고 어지신 마음과 모습에 어울리는 마지막 길 이었읍니다. 이 길을 지나 선생님은 그다지도 그리시고 사랑하시는 님의 곁으로 고이 가셨읍니다.
어제 저희는 오랜만에 시골에 다녀왔읍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錦江 기슭을 따라갔읍니다. 겨울 강물은 기슭이 얼었어도 바닷물처럼 유난히 푸르게 흐르고 있었읍니다. 白砂場은 신비롭게 광활하고 산과 하늘만이 물속에 비쳐 감이 흐르고 있었읍니다. 먼 앞산은 겹겹이 이어나가 은은한 회색빛에 싸여있었읍니다. 강은 흐르고 사람도가고、세월도 지나고 모든 것이 변하여 갑니다. 그러나 흘러가는 모든 것 안에는 지워지지 않는 장면과 기억과 사랑이 있읍니다.
선생님이 가신지 벌써 한 돐이 됩니다. 선생님은 가셔도 저희 마음속에 간직한 선생님과 나누었던 참시간은 그대로 저희와 같이 있읍니다. 언제나 그럴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찾아 뵌 1948년 가을의 일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선생님은 그때 소복차림의 단아한 모습이었읍니다. 그 뒤 30년 동안 선생님은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읍니다.
선생님은 여러 노래 중에서도「들의 고독」을 좋아하셨읍니다. 자연과 사색의 노래이고 남편과의 사랑의 노래였기 때문인 걸로 압니다. 선생님이 중년에 혼자되시어 8남매를 저마다 제 길을 가도록 키워내시고 또 어려운 예술의 길을 한결같이 걸어가실 때 이 노래는 어려움과 외로움을 달래주고 선생님에게 지나가버린 여름의 푸르름을 되살려주는 잔잔한 기쁨의 샘 이였읍니다.
선생님은 저희에게 천주님의 사랑과 사람답게 살길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선생님의 삶으로 참을성과 어지심을 보여주셨고 언제나 순명하는 겸손함과 끊임없이 한길을 가는 예술가의 헌신과 정진을 가르쳐 주셨읍니다. 그리운 선생님、이제 산과 들에는 더할 나위 없는 고요가 깃들고 있읍니다. 푸른 소나무 흐르는 구름 또 바람에 살랑이는 나무잎의 속삭임 속에 부디 고이 쉬시기를 저는 삼가 기도합니다.
▲故 鄭훈모 氏 略歷
▲1909 평양시 상수리에서출생
▲1931 동경제국음악학교 졸업
▲1935 동경유학ㆍ독일 인네트케뢰베 문하에서 사사하면서 음악연구
▲1936 경성 이화여자 전문학교 교수피임
▲1946 국립 서울대학 교수로 임명
▲1947 제7회 독창회
▲1954 광복 10주년 기념 여성 공로상
▲1955 서울시 문화공로상 수상(서울시 문화위원)
▲1957 예술원 종신회원 피선
▲1961 광복 17주년 기념 대한민국 문화 포상ㆍ제1회 새싹회 장한 어머니상
▲1966 제12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4 국민훈장 동백장수상
▲1978 숙환인 혈전증으로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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