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레지오는 구랍 23일 서울레지아의 세나뚜스 승격으로 레지오 도입 4반세기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53년 목포 산정동본당에서 뿌리를 내린 후 전국 각지로 조직이 확장된 레지오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교회 복음화의 첨병으로 성장, 이제「레지오 없는 한국교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세나뚜스는 한 나라 레지오의 최상급 평의회로서 한 국가에 1개의 세나뚜스가 원칙이지만 면적이 넓거나 단원수가 월등히 많을 때 한해서 2개 이상의 세나뚜스가 설립된다. 58년 광주에 세나뚜스가 설립된 이래 20년 만에 서울 세나뚜스가 발족함으로써 한국 레지오는 2개의 세나뚜스를 갖게 됐다. 서울 세나뚜스 발족을 계기로 서울 세나뚜스의 현황과 성장과정을 알아본다.
서울 세나뚜스는 레지아 당시의 조직이 그대로 세나뚜스로 승격、외형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단지 한국 세나뚜스이던 광주 세나뚜스의 관할 밑에서 일해오던 레지아 활동이 세나뚜스로 승격함으로써 애한「더블린」市에 본부를 둔 꼰칠리움(세계 평의회)과 직접 연락하면서 직속 꼬미씨움을 통괄할 수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서울 세나뚜스는 세나뚜스 발족일인 구랍 23일 현재 5개 꼬미씨움(수원ㆍ인천ㆍ춘천ㆍ원주ㆍ학생)과 20개 꾸리아에 7백 17개의 쁘레시디움에서 2만8천9백9명(행동단원 1만1천1백13명 협조단원 1만7천7백96명)의 단원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의 레지오는 다른 교회 활동에 비해 뒤늦게 시작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53년 5월 31일 故 현 대주교의 노력으로 목포에서 시작된 레지오는 6ㆍ25동란의 후유증으로 서울로 올라오는데 만 3년의 세월이 걸렸다.
서울 레지오의 기원은 56년 8월 19일 조직된 혹성동「평화의 모후」이다. 故 현 대주교와 성의학교 교장을 지낸 김 신부가 직접 지도하여 조직된 「평화의 모후」가 발족한 후 다음 달인 9월 26일에는 필리핀에서 레지오를 익힌 이해남 박사가 별도로 「치명자의 모후」를 통로를 거쳐 레지오가 도입되었다.
이듬해인 57년 1월 6일 미아리「샛별」쁘레시디움이 탄생하면서 발전을 거듭. 57년 1월 29일 혜화동「상지의 좌」가 꾸리아로 승격했다.
58년 6월에는 계성고 경기고 경기여고에 쁘레시디움이 발족됐고 8월에는 이화여고에 쁘레시디움이 설립、60년 7월 10일에는「파티마의 성모」소년 꾸리아가 창립됐다. 이러한 학생들의 레지오 활동은 현재 전국 유일의 꼬미씨움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해주었다.
혜화동「상지의 좌」꾸리아는 꼬미씨움(교구 평의회)으로 승격했으나 교구평의회는 주교좌에 있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60년 3월 30일 명동「무염시태」꼬미씨움으로 바뀌었으며「상지의 좌」꼬미씨움은 아현동 꾸리아로 옮겨졌다.
「무염시태」꼬미씨움은 74년 9월 25일 레지아(관구 평의회 상급 평의회)로 승격되면서 서울 관구 내 수원 인천 춘천 원주 꼬미씨움을 직속 꼬미씨움으로 관할、실질적인 세나뚜스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다른 교회활동에 비해 뒤늦게 시작된 서울의 레지오는 월등한 교세로 조직을 확장、레지오의 발상지이며 한국 세나뚜스를 갖고 있던 광주 세나뚜스 보다 더욱 비대해져 한국 세나뚜스가 서울로 옮겨질 듯한 움직임이 엿보였다.
광주 세나뚜스는 교통과 지역적인 핸디캡 등 복합적인 사정으로 전국 레지오를 원활히 통괄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다라서 세나뚜스가 서울로 옮겨져야 한다는 기운이 일어났으나 74년 서울 꼬미씨움이 레지아로 승격、타개책이 마련되었다.
65년 3월23일 꼰칠리움 순회 사절 루카스 여사(필리핀人)의 내한은 서울 레지오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루카스 여사는 교본에 입각한 지나친 원칙적용으로 논란을 거듭하던 대방동「천주성총의 모친」꾸리아 사건을 해결해주었다. 64년 9월 16일 발족한 대방동 꾸리아는 서울에서는 처음으로 1개 본당 쁘레시디움들 만으로 꾸리아를 조직、승인문제를 놓고 격론을 벌이다가 루카스 여사의 개입으로 해결을 보았다.
또한 루카스 여사는 레지오는「경제적 원조」(물질적 부조)를 할 수 없다는 교본의 자의해석을 둘러싸고 해결을 보지 못하던 레지오 운영의 난점을 명쾌한 판단력으로 깨끗이 처리、레지오 관계자들로부터 한 몸에 찬사를 받았다.
루카스 여사는『교본은 원칙이며 비상시는 벗어날 수도 있다』고 전제、예를 들면 교본에서는 회합을「2시간 이상」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나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는 1시간 만에 회합을 마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당시는 원칙론이 강세를 보여 레지오 활동 중 단원들이 비신자에 묵주나 십이단 등을 선물하거나 환자 방문시 꽃을 들고 가는 것까지도 금하였다. 이에 루카스 여사는「경제적 원조」는「의식주에 한한다.」고 유권해석하고 의식주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직접도우는 것보다 본당에서 도우도록 주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교본해석을 둘러싼 의견대립은 최근에도 있은 일로 지난해 5월에는 꼰칠리움 사절 맥그라쓰 신부의 내한으로 많은 해결을 본바있다.
오늘의 레지오가 한 두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레지오의 육성과 발전을 위해 뛰어난 활동을 한 사람들은 많다. 서울 레지오의 공로자는 故 현 대주교를 비롯 노기남 대주교 이경재 신부와 이해남 신태인 김관선 장대원씨 등을 손꼽을 수가 있다.
그리고 초대 레지아 단장을 역임한 노문호씨(명수대 꾸리아 단장)와 꼬미씨움 단장을 역임한 김규익씨(봉천동 단장)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봉사해오고 있다.
서울 세나뚜스의 발족은 지금까지 한국 세나뚜스가 지방에 위치한 난점을 타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高>
♣고침
지난 호 本面 서울 세나뚜스 승격기사 중「신태인」씨는「신태민」,「장대원」씨는「장대훈」씨의 잘못이기에 각각 바로 잡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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