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흘 전에 공소회장의 기별이 있었기에 고백성사 후 제단 앞에 서니 젖꼭지를 물린 채 애를 안고 나오는 어머니- .
그는 장부를 잃은지 여드레째다. 흙돌담 움막집 앞에서 가마니로 덮어둔 시체에 둘러서서 고별식을 할 때 어깨가 깊이 떨리며 울먹이던 그 부인의 몸이 너무 무거워 보였었다.
이태전 낭군을 찾아 이곳 정착마을에 와서 본당 신부와 이야기 몇 마디로 절차를 마치고 동거해 오던 터다. 그녀는 비록 시골에서 이긴 했어도 이남삼녀의 오붓한 가정 둘째딸이요、향리에서는 양반가문이라고들 부러워하는 집안에서 그늘 없이 자랐다. 소학교 밖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혼기가 차자 날이 멀다하고 드나드는 중매쟁이들의 성화를 거절해가며 문벌 좋은 장손집 맏며느리로 시집을 갔다. 도회지에서 고등학교 까지 나왔다는 신랑은 시집 온지 두해 만에 군대에 가고 사는게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의 겨를도 없이 시할머니 시부모 모시고 시동생들과 시골 일에 넋을 팔며 떡 두꺼비 같은 아들까지 낳았다.
제대해 돌아온 남편이 친구와 사업을 한답시고 열을 올리는 사이 두 차례의 상(喪)까지 당하고 나니 두 해 사이에 3천여평의 전답과 선영을 모신 산까지 남의 손에 넘어갔다. 그 뿐 아니라 남편마저 소식이 없어 겨우 알아보니 시내에서 단칸 셋방에 남매까지 낳고 살림을 차려 있는게 아닌가. 『나와 같은 여자를 하나 더 만들기 싫어서』가만히 물러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찾아든게 정착마을-동갑의 음성 나환자가 부인은 거년에 도망쳐 버리고 어린 딸 하나를 데리고 한쪽만 움직여지는 팔다리에 의해 연명해가고 있었기에 그의 팔다리를 대신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분에 겨웠던지 폐결핵과 영양실조의 합병증으로 분담했던 영역마저 잃은 것이다.
86명의 정착마을 주민 중에 환자가 아닌 성인으로는 셋 중의 한명인 이 어머니의 품、얼룩얼룩한 화학섬유 누더기에 안긴 새 생명-눈썹도 손가락도 없이 히멀거니 허공을 쳐다보는 대모라는 아주머니-그러나 이 생명이 이마에도 같은 물을 부었으니 큰 본당에서 하얀 포대기에 쌓여 이웃들의 법석을 받으며 부어지는 세례와 같다고-전능하신 주님의 자비를 믿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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