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때 진료소 일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부랑아들이 모여 있는 영아숙이라는 곳에 가 그들의 갖가지 상처를 치료해 주곤 했었다.
더욱이 비가 오는 날이면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합창으로 불러대는 아이들의 노래 소리는 빗소리와 함께 애달픈 장송곡처럼 들렸다.
애들 중엔 손에 큰 상처를 입은 지훈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매일 깨끗이 치료한 후 새 붕대로 매어 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이튿날 가보면 붕대는 온데 간데 없고 대신 다 떨어진 양말로 상처를 동여매고 있었다. 그러니 상처는 불결해져서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또 풀었구나. 그러면 상처가 낫지 않아요.』하지만 지훈이는 말없이 두 눈만 깜박이고 있었는데 그 눈 속엔 가슴을 찡하게 하는 어떤 슬픔과 갈망 같은 것이 가득 깃들어있어 난 더이상 야단을 칠 수가 없었다.
그 후 바쁜 일 때문에 5일만에야 그곳에 갔더니 훈은 울면서『수녀님 제가 말 안들어 다시는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이젠 안 울겠어요. 절대로요』『그래、그래야지』
훈이 얼굴은 헬쓱한 것이 더욱 축이난 것 같았다. 『밤이 되면 손이 더 아파요. 그러면 엄마가 자꾸 생각나요.
지훈아 많이 아프냐 하시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실 엄마가요. 이 양말은 엄마가 짜주신 거예요. 그렇지만 엄마는 돌아가셨거든요. 이 양말을 보면 엄마얼굴이 보이는 것만 같았어요.』훈의 까만 눈엔 눈물이 반짝 빛났다. 그제서야 난 알 수 있었다. 왜 그 아이가 양말로 상처를 싸매있었는지를…
그 양말을 어머니의 손길로 의식하고 지훈이는 아픔을 달랬던 것이다. 『나는 다른 글은 못써도 우리엄마라고는 쓸 줄 알아요. 난 계속 써요. 우리엄마. 우리엄마. 우리엄마…라고요.
어제 밤에는 엄마를 자꾸 부른다고 애들이 시끄럽다고 한 주먹 얻어 맞았어요.』
지훈이의 이야기는 끝이없었다.
『지훈아、다음에 또 이야기 하자. 뒤에 있는 아이가 기다리잖아.』
상처가 큰 아이는 시간이 걸리니 이야길 하면서 치료를 해주지만 상처가 작은 아이는 못내 아쉬운 듯한 표정 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지훈이는 수줍은 듯 이런 말도 했다.
『제가 제일 즐거울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글쎄、언제일까?』
『바로 지금이에요. 수녀님이 처음으로 내 아픈 손을 만져 주실 때 꼭 우리엄마 같았어요. 엄마가 다시 살아 나오신 듯 전 치료받는 이시간이 제일 좋아요』정말로 천진하고 속임 없는 소년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내 가슴이 얼마나 뭉클해왔었는지… 오죽이나 엄마가 그리웠으면 하찮은 나의 얼굴、미소한 나의 손길에서 엄마를 발견 했던 것일까.
그 후 지훈이는 우리 소년의 집에 들어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이제 덜어진 양말 따위는 잊기로 했어요』제법 의젓하고 씩씩하게 자라나는 지훈이가 마냥 대견스럽다.
곱게 겨우 아물은 지훈의 마음의 상처가 사회에 진출한 후에도 다쳐지지 말기를、그 애의 삶이 항상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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