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의 전례 성가는 비교적 쉽고 간단하다. 그 중에서도 주로 시편 성가를 부르는데 독창자가 반드시 있어 또박또박 그리고 대단히 잘 훈련된 음성으로 선창을 하면 대중이 그 응답을 노래한다. 물론 그 응답은 그날 즉석에서 배운다.(미사 전 성가연습 때)
독창과 응답으로 구분하는 이 노래양식은 서구에선 상당히 오래된듯하다. 또한 전례적으로 보아 가장 합당한 방법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쉽게 든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노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일은 더욱 중요한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독창자가 노래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그날 전례의 의미를 마음에 새기고 묵상하는 일은 전례에 참석하고 있는 대중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서울 돈암동성당에서 시편성가를 성가대가 몽땅 불렀더니『성가대만 노래하지 말고 우리도 노래 부르게 해 달라』는 어느 회장님의 의견이 문득 생각난다. 그 당시 전체신자들에게 응답노래를 가르칠 겨를이 없어서 그랬지만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내 기억으로는 한국 신자들의 성가에 대한 열성과 솜씨가 보통을 넘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말씀을 노래로 듣는 훈련은 아직 잘 안 돼 있다고 본다. 빨리 계몽되어져야 할일이라 생각한다.
미사 입당 때부터 퇴장 때까지 무려 7~8곡을 노래한다. 입당노래ㆍ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ㆍ층계송노래ㆍ복음전후노래ㆍ거룩하시다ㆍ신앙의 신비여ㆍ천국의 어린양ㆍ영성체후ㆍ감사노래를 보편적으로 부른다. 특기할 만한 것은 층계송 시편노래와 영성체후 감사시편노래인데 절대로 빼놓지 않는다.
소수의 사람만이 입을 벌리는 로마의 본당실태와는 달리 이곳사람들은 웬만한 노래는 다 알고 함께 부르며 노인네들이 더 극성스레 노래한다.
오히려 젊은이들은 어쩐지 성가를 잘 모르고 대중들이 노래할 때에 이방인들 모양 남의 입만 쳐다본다.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추세치고는 참으로 고약한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대신학교 성당에서도 인근의 신자들로 구성된 공동체가 있어 미사를 지내는데 요즈음은 내가 반주를 하고 있다. 모두들 기가 막히게 노래를 잘한다. 음악 애호가 치고는 기성 성악가 못지않게 노래를 잘 부르는 본당 신부의 근사한 독창(선창)에 따라 하나같이 응답을 해낸다.
앞서 말한 대로 여러분의 성가집 외에 많은 단편들이 있어 한국 같으면 복잡하고 혼돈되어 아우성 이겠지만 이 사람들은 매번 새 성가를 부르는 제도가 관습화되어있어 오히려 더 많은 성가곡이 만들어져 나오길 바라고 있다.
성가곡의 생활화도 무척 부러울 정도다. 주일미사가 끝나고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나누는 습관에 따라 나도 함께 초대되어 갔는데 식전에 반주를 마시는 동안 계속 성가곡을 부른다.
오늘미사 때 불렀던 노래부터 시작하여 퀘퀘묵은 옛날곡도 할머니 할아버지의 선창으로 곧잘 불리워진다.
수염 기른 노인네 합창단원ㆍ절구통 모양의 할머니 성가대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 이긴 하지만 참 대견스럽게 보인다. 이렇게 해서 주일을 축제 속에 보낸다.
성가보급은 주로 미사 전에 한곡씩 배우는 걸로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성가 책이나 례코르ㆍ카세트 등으로 배운다. 미사 전 잠깐 동안의 성가연습은 거의 필수적이다. 본당마다 지정된 성가 지도자가 있어 전례 담당신부와 상의 끝에 그날 전례와 연관되는 성가곡을 선택하여 미사 전 연습 때 가르친다. 미사 중 노래 대부분을 신자들이 함께 노래하나 사이사이에 성가대가 멋들어지게 분위기를 돋우고 신자들은 노래가사를 음미하며 아울러 음악을 감상한다.
대축일 때는 성가대가 한 달 전부터 부지런히 연습한 성가곡(대곡)을 하느님과 대중들에게 선사한다. 다만 한가지 한국과 다른 것은 젊은 양반들보다 중년 남녀들이 더 많은 성가대구성이다.
로마의 대성당(베드로ㆍ바오로ㆍ라떼당ㆍ성모마리아)에서는 성가대가 매주 초기음악을 중심으로 빨레스트리나의 뽈리포니를 자주 부르는데 비해 여긴 그이후의(바로코 음악 이후)곡을 자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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