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후 복음은 세계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어갔다. 그러나 복음전파와 복음화에는 커다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알고 갖고 있는 것과、신앙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찬이 생기고난 후 이 세상에는 전에 없었던 무신론이 등장했다. 무신론은 그리스도가 복음을 선포한 후 그리스도교가 전파될수록 조직화되고 확장되어 왔다. 2천년동안 그리스도교가 확대될 대로 확대된 유럽에서의 전교가 쇠퇴 일로에 접어드는 반면 아직 완전히 전파되지 않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좀 더 활기를 띠고 있는 현상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이고 구원의 약속인 복음은 너무 인위적으로 인간적 기교로서 해석할 경우 오류를 범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복음을 있는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문제가 발생 되고 무신론의 등장을 허용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무신론자 유물론자들이 신의 존재를 계속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싹 터 오르는 신을 향한 갈망을 말소하려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창조될 때부터 신께로 향하는 존재로、창조된 인간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결국 자기부정이고 자가당착에 빠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크리스찬 사상의 발달과 더불어 무신론이 확장돼온 원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깨닫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복음을 잘못 해석한데 더 큰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복음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간적인 기교로 해석한 결과 인간은 스스로 새로운 형태의 죄에 얽매이게 됐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신앙에 대해 회의적이다. 교회가 전하는 신앙을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고 그들의 갈망을 해소시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신앙회의의 원인을 현대라는 시대의 측면에서 분석해보면 현대인들은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의 산물인 TV나 신문 등 매체를 통해 홍수같이 쏟아지는 충격 속에 생활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겠다.
과거에는 일생에 한번 체험할만한 충격을 매일 겪는 현대인은 그 수많은 자극 속에서 자신을 상실하고 자아를 마비시키기까지 한다. 이 같은 빈번한 자극 속에서 현대인의 양심과 생활감각은 둔화되고 무디어진 생활 속에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인간과 사회와의 관계가 둔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마저 묻어진 것이다.
하느님으로 채워져야 할 인간의 마음을 물질로 가득채운 현대인은 메울 수 없는 허전함과 불행을 안고 끊임없는 정신적 방황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모르고 있다.
단지 현실을 잊어버리고 이탈해 보기위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관능적 광란적 행위로 치닫는 현시점에서 청소년들이 겪는 고민은 더욱 심각하다 인간으로서의 정도를 걷기조차 힘든 현실에서 인류가 겪어야할 최대의 고민은「너 자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자신 있는 해답을 줄때 해결된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이데올로기도 개의치 않고 인권ㆍ윤리ㆍ정의마저 의미를 상실하는 현실、하느님 없이 물질만으로 가득찬 현실에서 젊은이들이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인들이 물질만능에서 오는 방향 상실ㆍ불안 등에서부터 해방되고자 구원의 교회를 찾았을 때 크리스찬들은 과연 그들에게 복음적 생활에서 오는 희열과 풍요를 보여줄 수 있을까? 복음적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신앙인은 세례를 받지 않은 이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인가.
하느님은 타락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에서 의인이 10명만 나온다면 도시전체를 구원해주시겠다고 하셨다.
오늘날 크리스찬의 사명은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에서 소수의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자 한사람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하느님을 증거하지 못해서 구원받아야 할 사회가 멸망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현대인이라고 복음이 필요치 않을 수는 없다.
그리스도가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못 박히심으로써 복음 선포를 하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는데 2천년 후 올바로 복음적 생활을 하지 못한 우리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길이 막힐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후계자이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를 믿을 때 가정과사회는 명랑해지고 모든 이가 구원받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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