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교회를 신앙과 예배로서 연결된 사회적 단체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성서는 교회를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던 신비가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그리스도의 연장이며 사랑의 집단이라고 했다. 죄인들로 구성된 교회이지만 그것은 구원의 보증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암흑생활에 빛을 비춰주고 있는 희망의 존재인 것이다. 이런 교회는 인간적 측면과 神的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교회의 어원을 살펴보면 부른다, 소집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교회란 뜻이 희랍어「에끌레시아」는 원래 정치적 세속적모임에 사용되었으나 사도바오로가 이것을 교회 개념화 했다. 반면 유대인의「시나고가」는 오늘날 교회개념과 같은 종교적 행사를 위해 구원에 목적을 둔 하느님백성의 집단을 뜻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보면 하느님은 유목민으로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을 당신백성으로 삼기위해 테두리를 설정하셨고 그 안에 불러 모으셨다. 또한 신약성서도 흩어져있는 하느님의 자녀를 하나로 모으시기 위해 그리스도가 강생하시고 돌아가셨다.(요한11 ㆍ52)는 점을 지적했고 사도바오로는 교회를「구원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한 공동체」라고 규정지었다.
하느님은 아담의 범죄이후 흩어져있던 백성을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써 교회 안에 불러 모으고 그 테두리 안에서 구원받게 하셨다. 그리스도는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교회에 생명을 불어 넣으셨고. 교회는 성령의 감도에 따라 그리스도가 택한 사도들에게 안수의 은총으로 권위를 주시고 다스리시게 위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 구성원의 구원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공동체적 구원을 이룩하는 집단이다.
한편 성사적 의미에서 교회를 살펴보면 성사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가시적인 사물이나 외적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성사 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인간의 능력으로 직접 도달할 수 없는 하느님에게 강생하심으로써 중계역할을 하셨고 승천하신 후 자신의 연장이며 대리자로서 교회를 이 세상에 남기신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자체를 성사로 본다.
오늘날같이 불신풍조가 만연한 사회에서 불신앙의 태도는 하느님을 거부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인간이 복음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을 때 이미 인간사이의 신의도 자연 상실하게 된다. 하느님을 상실한 인간은 본능적 욕구에 급급하여 끊임없는 욕망을 채우려하기 때문에 인간 사이는 더욱 괴리되고 만다. 그러나 스스로를 진리요. 길이며 생명자체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늘날까지 수천 수억인의 생존의 의미이며 어두움을 비추는 빛으로 남아있다. 인류역사상 무수한 단체가 있었으나 2천년이란 긴 세월동안 하나같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교회뿐이다. 그래서 요셉 라씽거는 교회를 달에 비유했다. 과학의 발달로 신비가 벗겨진 달은 황무지뿐인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태양빛을 받아 세상을 비추고 풍부하게 해주는 면이 있는 것과 같이 오늘날 교회도 그 구성원 하나하나는 잘못 투성이고 비난을 받아야 할지라도 그 교회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반사시켜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가 체험하는 교회는 가진 것 없는 텅 빈 교회다. 그러나 이교회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득 채워져 우리자신과 하느님을 모르는 이에게. 빛을 전파할 때 참가치를 지니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 교회는 개인의 교회가 아니다. 복음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 이뤄지고 이교회가 개인에게 빛을 비춰줌으로써 신앙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생명의 원천. 신앙의 원천이며 이 공동체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구원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한다.
우리는 교회의 잘못을 가혹하게 심판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고 성장케 한 어머니와 같은 교회를 깊이 사랑해야겠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반영시키고 생의기쁨과 영생을 줬다는 점에서 교회는 사랑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지금까지 가져왔던 교회에 대한 불신과 사랑 없는 태도는 큰 잘못 이었다는 점을 깊이 반성해봐야겠다.
교회는 불완전한 사람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향해 서로 믿고 협조하여 사랑하는 특히 헐벗고 억압받는 이들에게 모든 정성을 쏟아 사랑하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현대의 불신풍조 속에서 크리스찬 만이라도 이 같은 생활로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야겠다. 현세적 고통을 견디면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즐겁게 고통 받는자들 서로가 의지하고 사랑할 때 부활을 맞는 크리스찬의 환희 또한 클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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