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소주일 입니다. 이날을 맞아 마르꼬 복음 10장 28절에서 30절까지를 상기해봅니다.「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나서서「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왔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합니다.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과 형제, 자매와 어머니,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누구나 현세에서 박해도 받고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누리는 복도 백배나 누릴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하셨읍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로는 성소召命에 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성소에 응하는 사람이 적은 것 같습니다 만 예수님께서는「현세의 복도 백배나 누릴 것이다」라고 하셨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거짓이 있을 수 없다면 이 말씀을 우리는 믿어야 할 것이며 또 사실 과연 그러한 것입니다.
영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일원으로서 다 부모 형제자매이지만 성직생활을 하는 사람은 더한층 그러한 것입니다. 성직자와 성직자간 성직자와 신자간보다 더 서로 믿고 서로 아끼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골육지친을 빼고는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또 박해시대라는 특수한 때가 아닌 이상 생활보장도 성직자들에게는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럴진대 무엇 때문에 성소에 응하기를 꺼릴 것입니까? 더욱이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보장해 주시니 이 위치보다 더 좋은 곳은 없지 않겠읍니까?
어러함에도 불구하고 성소에 응하는 것을 꺼린다거나 특히 방해까지 하는 부모들이 간혹 있다니 참으로 이상한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지 않은 소치일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을 정독해야 하는 것은 크리스찬 생활에 기본인 것을 이 기회에 인식해야 할 것이며 성경을 알고서도 꺼리는 사람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 또한 더욱 딱한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누구나 성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더욱 예수님 말씀처럼 예수님이 열어주신 문으로 들어가 성직을 받들어야 지도적처럼 담을 넘고 들어가 성직을 봉헌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성소가 없는데도 성소를 가장해서 성직에 임한다면 그자신은 물론교회에도 막중한 손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니 이점 측히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직소명은 아무도 방해해서도 안되겠지만 또 강요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그는 도적이요 강도일 것입니다.
도적이나 강도가 이 세상에서도 편안할 수 없으며 더욱 영원한 生命을 기대할 수 없는것이 아니겠읍니까? 따라서 성소는 아무도 강권할 수도 없는 것이며 가장해서도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 해야겠읍니다.
단하나 알아둘 것은 성소에 응해 성직을 충실히 봉행한자는 이 세상에서도 백배의 갚음이 있고 來世에서는 영원한 生命과 幸福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성소에 응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않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主 그리스도의 約束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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