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가정을 두고 참 행복한 가정이라고 하는 건지는 누구도 한마디로 말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 막연한 것 같은 행복한 가정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얼핏 서로 모순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은 결국 이런 불확실한 것들만을 위해서 끝까지 추구하다가 마는 그런 존재일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행복한 가정운동」은 바로 이런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운동이다.
처음 이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단지 이것을 교회가 권장하는 소위자연적인 피임방법을 지도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아니, 실상은 이제 이 운동이 4년째나 접어드는 지금에도 이 운동에 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아직도 그런 피임지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행복한 가정운동은 교회가 그토록 중요시하는 가정에 대한 바른 인식을 기초로 한다.
그러니까 이 운동은 가정을 가진 모든이가 가정을 하느님 안에서 다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두 말할 나위도 없이 가정은 인간생활의 기본이며 최초의 교회성소를 이루는 곳이다. 여기서 새삼 강조할필요도 없는 일이지만「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보다 깊은 예지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생활의 다른 요청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곳이므로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고 말한 교회사목 헌장이나「가정은 사회의 활력 있는 기초적 세포가 되는 사명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고 한 평신도 헌장은 바로 이런 사실을 이르는 말인 것이다.
말하자면 가정은 그것만으로 이미 작은 교회이고 작은 사회이며 현실적인 교회와 사회는 그 작은 교회 작은 사회의 집합체일 뿐인 것이다.
그것은 가정이 없이는 교회도 사회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로도 분명해지는 일이 아닌가?
따라서 가정에 깊은 신앙이 없다면 교회도 참 신앙을 가질 수가 없으며 가정의 행복하지 않고는 사회가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말하자면 신앙을 기르고 행복해지기 위한 이유와 노력이 가정 안에 없다면 교회도 사회도 결코 발전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자녀는 가정 안에서 다른 어느 것 보다도 가장 가능한 행복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자녀를 낳고 키우기 위해 부부가 계획을 세우고 또 실천하는 일은 바로 그 행복한 가정을 위한가장 구체적 노력인 것이다.
그런 모든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곧 가정이 갖는 교회적 의의를 만족시켜 주는 것 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말하자면 하느님 안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부부들의 사랑과 양해, 부부들의 화목과 신의 ,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과 대화, 자녀들의 영신적, 도덕적 교육, 그리고 가정에서의 기도, 이 모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일이므로 그 어느 일 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가 비자연적인 모든 가족계획 방법들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유는 이 모든 방법들이 이런 모든 부부와 또 부모자식간의 일을 조금도 절대적인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것만으로 능히 설명이 되는 일이다.
말하자면 이런 모든 방법들은 부부간의 사랑이 없이도, 양해가 없이도, 화목과 신의가 없이도, 어느 한쪽의 마음대로 사용될 수 있는 것 들이라는 점이다.
이에 비하면 자연적인 방법은 바로 이런 점들을 기본 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이것은 곧 방법이상의 큰 뜻을 지닌다는 것이고 이일을 통해서 행복한 가정으로, 하느님의 참뜻을 쫓는 성가정으로 모든 신자들의 가정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자연적인 가족계획의 원리는 주기적인 금욕에 있다.
원래 임신이란 여자만이 가진 생리주기(보통 28일) 가운데서 단 나흘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부부가 임신을 피하는 일은 이 나흘간의 금욕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며칠 길게 금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방법을 쓰게 되는데 그것은 순전히 실패해서 임신하는 경우를 줄여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부부가 진심으로 자녀 낳기를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서로 신의로 약속하고 양해하고 이해함으로써 이 기간동안만 금욕하는 것이 자연적인 방법의 원리인 것이고, 언제 얼마만큼 금욕해야하는지를 결정지어 주는 것이 방법의 내용인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방법을 쓰지 않으려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결국 금욕이 어렵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만큼 자녀를 안 낳기 위한 동기가 희박하거나 부부가 서로 협조할 수 없는 관계인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습관이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처음 얼마간 이런 금욕생활은 큰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 금욕은 그 자체로 하나의 희생이며 절제인 것이고 그런 인간적 희생과 절제는 곧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공로가 되는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살려고만 할 때 하느님의 법도를 따라 주기적인 희생과 절제로 생활한다는 것은 실제로 신자들에게는 더없는 자랑과 긍지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신이 가능한 이 며칠을 금욕함으로써 이후에 오는 안전일을 부부가 즐거움으로 맞이하는 마음은 또 부부의 사랑과 이해, 그리고 결국은 행복한 가정을 설계하고 이익을 위해 경주하는 모든 노력에 있어서까지도 서로 협조하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행복한 가정운동에서 지도 계몽하는 자연적인 가족계획 방법은 이미 가정을 작은 교회로 이루어 성가정이 되게 한 부부들에게는 조금도 어려울 것이 없는 습관적인 일뿐이고 단지 그런 가정을 이루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하는 모든 부부들에게는 다른 어떤 일보다도 합목적적인 수단이기도 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행복한 가정운동」은 전국 각 교구에 교구위원회를 설치했고 교구단위의 지도원을 양성해서 이제는 전국어디서고 누구나 쉽게 이 행복한 가정운동에 참여하고 또 필요한 부부는 자연적인 가족계획 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각 교구는 이 일을 위해 지도신부님과 위원회의 모임을 갖도록 되어있고 서울의 성모병원을 비롯해서 춘천과 목포의 성 꼴롬반 병원, 부산의 메리놀 병원, 그리고 대구 파티마 병원 등에서는 수시로 요청에 의해 자연 가족계획지도원을 양성해주고 있으며 많은 교구가 이미 전문적인지식을 가진 지도원을 확보하고 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그러나 아직도 이일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 운동에서 지도하는 자연 가족계획의 원리나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함으로써 참으로 하느님 안에서 행복해지는 가정을 이루지 못하는 분들이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것은 우선 이 일을 하는 우리들의 역량부족이 그 첫째 이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도 온갖 노력을 집중하여 여기 쏟을 뿐이며 이런 우리의 우직한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지난 한 두해 사이에 전국적으로 이 운동이 메아리쳐 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기쁨을 주었음을 여기저기서 보는 일이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 왔느니라. (베드로전서2장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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