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버 총 원장은 3월 18일 하루를 백동 수도원에서 보내며 수도원 경영의 학교시설을 두루 살폈다.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길이 시작되는 비탈에 서있는 건물이 직업학교였다.
극동지방의 포교관례로 보아 직업학교는 아주 생소한 것이었고 따라서 당연히 그 성공이 의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기도하라」와 동시에「일하라」의 표어를 내세우고 있는 베네딕또 회로서는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한국의 형세도 그 설립을 지원하고 있을 뿐더러 요구마저 하고 있었다.
외부 세계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한 한국의 쇄국정책은 수공업을 유럽에서처럼 유용한 산업으로 발전시킬 수 없었다. 그 결과 한국민은 가난한 백성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천주교인은 가장 가난한 자로 남았다. 오랜 박해가 천주교인을 가난하게 만들었으나 박해가 그친 후에도 가난을 벗어나기엔 시일이 너무 짧았다.
형세가 이러하고 보니 직업학교는 처음부터 번영할 소지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목공소와 철공소가 문을 열자 수백명의 지원자를 거절해야할 정도로 한국의 젊은이들의 반향은 상상이상의 것이었다.
직업학교의 번영과 더불어 이제 천주교인은 생활의 기반을 견고히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외교인들 가운데서의 그들의 위신도 점차 회복될 것이다. 박해 당시 그들의 영웅적인 헌신과 용기로써 외교인들을 놀라게 했다면 이제 천주교인들은 천주교가 또한 사회적 경제적 변혁을 초래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의 소유자임을 보여야할 때가 왔다. 교회는 또한 자애 깊은 어머니처럼 자녀들의 일용할 양식을 충실히 돌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직업학교 못지않게 중요한 사업은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사범학교의 설립이다. 바로 이 사명을 띠고 베네딕또회가 한국에 진출한 것이지만 일을 즉시 시작하기에는 극복해야할 장애물이 너무나 많았다. 이 일에 착수하고자 1909년 한국으로 나온 7명의 신부와 수사는 우선 언어의 장벽에 부딪쳤다
언어의 기초지식도 없어 학교를 시작한다는 것은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2년간의 각고로 어느 정도 이 난관을 극복하고 나니 이번에는 더 큰 장애물이 나타났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일본당국은 교육을 독점하려하였고 때를 같이하여 그렇게도 높았던 한국인의 향학열이 돌연 식어버렸다.
한국이 이웃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자주와 독립을 지키고자 교육에 열중했던 시기, 교육사업에 유리했던 이 절호의 기회를 프랑스 선교사들은 이용하지 못했다. 박해시대의 유물인 그들의 포교 방법은 교육사업과 결함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의 긴급성을 긴 안목에서 내다보지 못했다. 설령 고등교육을 시도할 생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돈이 없었으니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특히 일본의 학교탄압을 고려할 때 확실히 고등교육의 시도는 부적당하게 보인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민중의 교육을 단념해서는 안 된다. 만약 한국교회가 용기를 잃고 민족의 정신적 향상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공적생활에서 제외당할 날이 올 것이다.
초등교육과 그것을 담당할 교사의 양성은 절대로 필요하다. 오는 가을 수도원아래 건물이 준공되면 사범학교가 정식으로 발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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