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은 福者 金大建 신부의 축일, 8일은 외부행사의 날- 이날을 맞아 지금까지 잊혀져만 왔던 김 신부의 사제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고찰해 보는 것도 우리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과 촉진제가 되리라 생각 된다. <편집자註>
사제와 세속과의 관계는「바티깐」공의회 이전 까지만 하더라도 원수지간이나 다를 바 없었다. 사제는 인간으로부터 격리된 자이고 세속으로부터 분리된 자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인간을 초월해야 하고 세속을 경시해야 한다. 하느님의 일에 종사하려면 인간의 일에서 떠나야한다.
인간사에 종사하며 동시에 하느님의 사업에 종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사제는 세속을 경시하는 그만큼 하느님 일에 더욱 전심할 수 있다. 이렇게 사제가 인간과 세속을 초월하는 척도는 곧 그의 성덕의 깊이를 나타내는 척도로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티깐 공의회는 세속에 대한 사제의 태도에도 발전을 가져왔다. 회개시켜야할 인간이고、복음화 되어야 할 세상이기에 그것을 이용해야하고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사제는 동료사제들과 또한 기타 세상 사람들과의 우정에 찬 형제적 생활을 통하여 인간적 가치를 존중하는 것과 피조물을 하느님의 선물로 평가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세속을 대하는 김대건 신부의 자세는 어떠한 것이었을까. 물론 그가 19세기의 인물이고 더우기 세속과 피조물에 대해 비관적이었던 얀세니슴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할 때 세속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비관적이고 부정적이었을 것으로 쉽게 판단을 내릴 수 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속단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友愛、우정、효성 등 인간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인간미가 풍부했던 인간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김대건 신부는、어머니 마리아에게『왜 나를 찾으셨읍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읍니까』하고 육정을 일축한 소년 예수처럼 어머니를 보고 싶은 육정을 억제할 줄 알았다. 10년만에 입국한 김대건 부제는 의지할 곳 없이 유리걸식하고 있다는 어머니에게 기별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가나」에서 아직 그의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청을 들어준 주님의 모범을 따라 때로는 자기의 때를 어겨가며 어머니의 청을 들어줄 줄 아는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다. 1846년 봄 김대건 신부는 양지「은이」근처에 사는 어머니를 방문했다. 원래 부활 전에 서울로 올라오기로 되어있었으나 김대건 신부는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여 부활 때까지「은이」에 머물렀다.
김대건 신부는 순교를 목전에 두고 사랑하는 친구요 동창인 최도마 부제에게 어머니를 특별히 부탁하였다. 이것도 미진해서『10년 동안이나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곧 또다시 잃어버렸으니 설움에 잠길 어머니를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고 페레올주교에게도 당부하였다.
또한 교우들에게도 友愛와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지낼 것과 함께 갇혀있는 증거자들의 유족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김대건 신부는 비록 비천한 상공과 한 약속이었지만 그것을 꼭 지켰다. 사공 林致百은 포청에서 김 신부를 처음 만나자 그의 인격에 감동이 되어 신부와 함께 죽기로 약속하였다. 한편 김 신부는 비록 그가 천주십계도 다 외우지 못하는 예비신자였지만 그에게 영세를 허락하였다. 하루는 임치백에게 관원이『신부는 죽지 않는다. 정부에서 벼슬을 주게 되어있다』고 말하였으나 임치백은『신부님이 직접 하신 약속인데 그럴리가 없읍니다』고 반박했다.
살고자하는 것은 人之常情이다. 이 인지상정을 김대건 신부는 순수하게 받아들였다. 프랑스군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김 신부는 옥에 있는 교우들에게 삶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나타냈다.『우리는 처형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세실 제독을 안다. 그는 확실히 우리를 석방시켜 줄 것이다』라고.
김대건 신부는 그의 희망이 헛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자 즉시 순교를 주님의 뜻으로 혼연히 받아들였다. 공의회의 말과 같이 김대건 신부는 인간과의 우정적인 접촉을 통해 인간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것을 배웠고、또 그렇게 가르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三仇와의 대결로 세속을 경계할 것도 아울러 가르쳤다.
세속에 대한 김 신부의 이러한 자세는 공의회의 가르침을 잘못이해하고 과도한 세속주의에 넘어가고 있는 이들에게 경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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