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벽은 고려말기의 대학자이며 정치의 교가이던 이제현(李齊賢)의 17대 후손으로 1754년 한강가 광주땅 윗두미에서 이부만(李富萬)의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름난 경주 이씨로 대대로 文官을 지내오던 그의 집안은 조부 때부터 武官을 지내게 되었는데 이벽은 아버지의 권고도 듣지 않고 무술보다는 오로지 학문을 닦는데 힘썼다.
어릴 때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총명하며 뜻이 굳었던 이벽은 경서를 읽으면서 그 깊은 뜻을 밝혔고 이름난 선비를 찾아가 글을 배우며 덕을 쌓았다. 자를 德祖、호를 瞭奄으로 가진 이벽은 남인파 선비들과 함께 1779년부터 6년 동안에 걸쳐 한국천주교회 창설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는데 그 주요업적은 다음과 같다.
이벽은 1779년 그의 나이 25세 되던 겨울에 이름난 학자 권철신(權哲身)이 정약전(丁若銓) 권상학(權相學) 등 여러 선비와 더불어 천진암(泉眞庵) 주어사(走魚寺)에서 강학회를 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눈이 덮인 1백리 길을 걸어서 이 모임에 참석、모든 경서를 토론했다. 10여일 동안 계속된 이 강학회에서 이벽을 중심으로 참석자들은 천주교가 가장 참되고 올바른 가르침임을 깨달았다
이들은 7일마다 주일이 있음을 알고 매월 7일ㆍ14일ㆍ21일ㆍ28일에는 힘든 일을 하지 않고 기도를 드리며 재계를 지켰는데 이는 꼭 2백년전의 일이었다.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함으로써 천주교를 믿게 된 이벽은 그 후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복음전파에 힘쓰게 되었다. 그는 1783년 4월 둘째누이(정약현의 아내)의 기일을 지내고 매부의 아우이던 정약전ㆍ약용과 함께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배안에서 큰소리로 오직하나이신 천주의 계심과 천지창조、영혼의 불멸 등의 교리를 설파했다.
이벽과 그 동료들이 몇 년 동안 천주교를 믿으면서 느낀 불만은 교리서적을 갖추지 못한 일이었다. 1783년 10월 이벽에게 교리를 매우던 이승훈이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갈 기회가 생기자 이벽은 이승훈에게 북경에 가서 천주당을 찾아 신앙생활을 위한 절차와 규정을 알아보고 교리서등을 사오도록 당부했다. 이벽은 북경에 머물러있던 40여일 동안 예수회의 그라몽(Grammont) 신부를 자주 찾아가 교리를 시험하고 귀국에 앞서 베드로라는 교명으로 영세한 후 많은 교리서 성물 등을 얻어 귀국했다.
우리나라 선비로서 가장먼저 세를 받고 귀국한 이승훈으로 부터 교리서를 전해 받은 이벽은 이 책들을 통해 천주교의 진리와 7성사、성인전、기도문、중국 및 우리나라의 미신행위의 잘못 후 이승훈과 정약종 형제들을 찾아가서 천주교만이 영혼구제의 참된 가르침임을 다시 밝히고 이승훈으로부터 요한세자라는 교명으로 세를 받은 이벽은 곧 전교활동에 나섰다.
그리하여 그는 서울 명례동(오늘의 명동)에 살던 중인계급의 중국어 통역관 김범우(金範禹)들을 비롯하여 권철신ㆍ일신 형제、정약전 3형제에게 세례를 주었다.
신자수가 날로 증가하자 이벽은 1784년 겨울에 김범우의 집 대청마루를 빌어 이승훈ㆍ정약전 형제ㆍ권일신 형제 등 수십명이 모인 가운데 푸른건을 쓰고 벽을 등지고 앉아서 교우들에게 천주교 교리를 드림으로써 교회를 자발적으로 창설하게 되었으니 이러한 일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이벽은 지도로 창설된 조선 천주교회는 그 후 몇 달 동안 7일에 한 번씩 같은곳에 모여 주일행사를 지내게 되니 이를 수상히 여긴 형조의 포졸들이 이듬해(1785년) 봄에 이를 적발교우들을 잡아가고 교리서 성상등을 몰수하여 형조에 바쳤다. 그러나 형조판서는 잡아들인 교인들이 모두 이름난 양반집안의 선비들 이었으므로 타일러 석방하고 교리서ㆍ성상 등을 돌려주었으나 집을 교회로 삼았던 김범우만은 혹독한 형벌을 내리고 충청도 단양으로 귀양 보내 죽게 하였다.
따라서 교회를 창설한 이벽은 그 부친이 천주교를 버리지 않으면 목을 매어 죽겠노라고 위협하고 온 집안이 반대하자 음식을 전폐하고 10여일 동안 고민하던 끝에 때마침 유행하던 쥐통전염병에 걸려 그해 봄 31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25세부터 6년 동안 교회창설을 위해 모든 정열을 쏟았던 이벽은 짧은 생애 동안에도「성교요지」(聖敎要旨)와「천주공 경가」를 지어 후대에 남김으로써 한국천주교회의 기틀로서 그 사명과 역할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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