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와서의 첫겨울은 내 생전 최고의 추위를 맞이한 해였다. 더구나 정신이상ㆍ저능아ㆍ불구아들 중 대부분 소대변을 가리지 못하는데다 겨울이라 밖에 장치한 수돗물은 모두 꽁꽁 얼어서 물 한방울 나오지 않으니 이들이 여지껏 어떻게 생활했는지 가히 짐작할만하다.
흙이든 대변이든 종이든 마구 닥치는 대로 주워먹는 아이들. 밤낮『으으』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우는아이、몇 시간씩 넘어져 간질을 하는 아이들 정말 너무도 처참 하였다. 신앙이 아니면 그들에게서 인간다움을 찾기란 무척 힘들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이들은 날 때부터、아니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자기의 위치 자기의 마땅한 몫인 기본적인 요소마저 침해당하고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지 못할 손해만을 당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부모는 그러한 아이를 낳고도 버림으로써 그들의 의무가 끝난 양、또 당국에선 그러한 아이를 한곳에 쓰레기처럼 모아 수용만 시키면 다된 양 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자기의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갔는가! 지금도 외친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책임져야 할 일들이라고…
대변을 그대로 싸는 아이들을 하루에도 두 세 번씩 목욕을 시키고 빨래는 새로 지은 세탁실로 보내어 냄새를 제거하지만 겨울이면 아직도 불편한시설로 아이들에게 고통을 주게 됨을 안타깝게 생각하신 신부님께선 저능아를 위한 새 시설 때문에 지금도 고심하고 계신다. 새로 시작한 저시설이 완공되는 날 다시 한번 기쁨을 맛보리라. 그러나 애로점은 그뿐이 아니었다. 2천여명의 아이들 중에는 항상 갑자기 열이 오르고 배탈이 나는 환자가 많이 생기는데 그에 대비한 의료문제였다.
매일 의무실엔 의사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진료를 하시고 2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 선생님이 오셔서 정신질환아이를 진찰、투약하고 계시지만 갑자기 입원이 필요한 아이들은 부산구호병원에까지 데리고가야하는 실정이다. 물론 응급은 적십자병원이나 가까운 개인병원엘 간다. 병원 가까운 곳에서 생활했던 나는 아픈아이를 데리고 개인병원 대합실에서 초조히 기다릴 때 비로소 옛날 가난했던 환자의 기다리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작년 6월이었다. 난 그때 불구아 2명과 정신이상 아이 1명을 데리고 부산병원에 갈 기회가 생겼다. 난 서울역에서부터 사람들에게 쌓여 구경거리가 되었다. 모두가 자리를 양보하고 아이를 보살펴 주는 것은 좋았지만 어떤 이는 나를 동정하고 어떤 이는 아이를 버린 부모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치고 어떤 이는 천주교회야 말로 진짜 교회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저 깨끗하신 수녀님께서 이런 너저분한 일을 할 수 없을거라며 자기들끼리 열을 내며 입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합실에선 약과였다. 기차에 오르자 혼수상태로 잠에 빠졌던 정신이상 아이가 발작을 시작했다. 의자에 혼자 눕혀 놓고 꼭 잡고 있어도 소리를 크게 지르며 의자 밑으로 몇 번이고 굴러 떨어졌다.
손님들의 시선은 모두 우리쪽으로 솔리고、난 그들의 여행에 시끄러움을 주는 것을 무척 면구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손님들은 모두 나를 도왔고 어떤 신사 아저씨도 어느 숙녀 아가씨도 불구아 한명씩을 자기 무릎에 앉힌 채 부산역까지 왔으며 주위 모든 손님들도 과일이나 우유 등을 사서 아이들에게 주라고 가지고 왔지만 아픈아이라 먹일 수가 없었다. 이상한 것은 그들 중 단 한명도 인상을 찡그러거나 싫은 내색을 감추고 한결 같이 좋은 일을 하신다며 칭찬들을 이었다. 오랜 고심 끝에 부산역에 도착하니 손님들이 서로대합실까지 업고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때마침 전화를 미리받은 우리 수녀님 3분이 자동차를 몰고 오셨으며 기차에까지 올라와 아이한명씩을 업고 가니 모두가 감격의 눈길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신다.
난 그때 생각했다. 그렇다. 아주머니처럼 아이를 들쳐 업고 다녀도 마음속에 부끄럽게 생각할 때 그것은 오직수치로서 끝나지만 그것을 기쁘게 이행할 때는 자신에게、또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감동을 줄 수도 있음을 알았다.
마치 복음에서『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끄럽게 여기면 나또한 하늘의 천사들 앞에서 너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라는 그분의 말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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