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이란 어떠한 것인가. 예수님은 일찌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자기 친구를 위해 자기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똑똑히 말씀하셨다. 죽음이 남을 위해 자기생명을 잃거나 아니면 바치는 것을 의미한다면 죽음을 빼놓고 사람을 운운할 수는 없다. 이렇게 사람과 죽음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모든 죽음이 반드시 사랑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 참된 사랑이 되려 할 때 반드시 죽음은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증거하기위해 또한 그의 모범을 따라 최고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도록 그가 하신 말씀을 솔선수범 하셨다 그 후 무수한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따를려고 노력하였고 그중에서도 순교자들은 예수의 모범을 가장 충실하게 따랐다. 그들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승예수를 가장 많이 닮을 수 있었고 동시에 사람에 대한 최대의 정거를 할수 있었다.
순교자 이 루가따는 옥중에서 언니들에게『생각하느니 천주시며 향하느니 천당이라』
는 말을 써 보냈다. 복녀 李連熙(마리아)의 전기에도 이와 비슥한 말이 나온다.『진실로 愛主萬有之上이라 하리로다. 세상은 생각이 없고 바라는자 主母시오 향하는자 천당이러라』
우리 순교자들이 배교하지 못한 첫째 이유는 주님을 萬有위에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하느니 천주요 바라는 主母였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고、결과적으로 그들의 죽음은 하느님에 대한 최대의 사랑의증거가 되었다. 순교자 李文祐 회장의 말과 같이 우리순교자들은 천주님께 사랑을 사랑으로 갚고 목숨으로 갚으려 했다. 우리 순교자들이 배교 못한 둘째이유는 「향하느니 천당」때문이 었다. 이러한 순교자의 태도를 儒學者들은 벌을 두려워하고 상을 타려는 이기주의적인 것으로 맹렬히 비난 하였다. 사실 지금까지의 천당에 대한 좁은 개념에는 서양의 이기주의적인 영향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신학은 천당ㆍ지옥ㆍ연옥 등을 장소로서가 아니라 상태로 보려는 경향인듯하다.즉 천당을 사랑의 실현으로서 죽음과 심판과 연옥은 사랑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보려는 것이다. 사랑의 실현이란 하느님과의 상봉을 말한다.「향하느니 천당」이란「생각하느니 천주뿐」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우리 순교자들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동경한 나머지 갖은 고문과 죽음마저도 기쁘게 받아 들일 수 있었다. 바오로사도의 말과 같이 장차 그들에게 나타날 영광을 생각할 때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최고의 증거인 동시에 세상의 구원을 대신하여 희생된義人의 贖錢을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인은 아직 예수와 순교자들의 수난과 죽음에서 그속죄적 의의를 시인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고통애 대해서는 그러한 의의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면 현대인은 고통에서 오로지 행복의 장애만을 보는 때문일 것이다.
물론 오늘날 고통에 대한 자세에 변화가 생긴 것만은 사실 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처럼 모든 고통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무조건 받아들일 것만은 아니고 나아가서 고통을 덜고 제거하는데 노력함으로써 세상의 완성이란 하느님의 계획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럼 에도 불구하고 악과 고통이 세상에서 완전히 제거될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죄를 현대신학이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인간 안에 악에 대한 경향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봉사 받으러 온것이 아니고 봉사하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살마들도 봉사를 받으러 그의 제자가 된 것은 결코 아닐것이다.그런데 예수님의 봉사는 철두철미 고통과 십자가를 통한 봉사였다. 따라서 그의 제자들의 봉사도 고통과 십자가의 길외에 다른 봉사가 있을 수 있다. 고통을 통한 봉사란 오늘에도 신자의 본질적인 의무일 뿐 아니라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의무이다.
봉사란 자신과 자기주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봉사란 남을 의해 고통을 겪는것이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곧 봉사는 아니다.예컨대 자기의 주장을 위해 겪는고통은 결국자기주장이오、거만이지 결코봉사는 될수 없다.
일본「나가사끼」에서 聖母騎士會를 세운 플랜드 출신의 꼴베 신부는1941년 나찌스에의해 억류되어있던 중 억류자중 처자가 있는 사람을 대신하여 처형되였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의 대표적인 의인의 소죄이다. 고통을 통한 참된 봉사는 이처럼 숨은 봉사여야 한다고 연약한 형제에 대한 봉사여야 한다.
복자성월을 맞아 우리는A 순교자들의 고통을 통한 봉사에 새삼 감사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동시에 우리자신이 고통을 통한 봉사에 얼마나 기여하고 있는가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가 순교자들이 대신한 희생에 못지않게 그들의 轉求를 청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