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의료전문 종사자들은 만약 자기환자가 진단결과를 알고나면 자살을 하려고 할까봐 겁이 나서 그가 중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두려워합니다. 환자들의 내심을 확인할 길이란 없읍니다. 중병을 앓고있다는 사실과 그러나 이러저러한 치료법이 있다는 희망을 동시에 들은 환자는 그들이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이상의 용기를 가지고 그불행한 소식에 대처할수 있읍니다. 자살을 생각하는 환자들은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 분류로 나누어볼수있읍니다.
①사람과 사물을 모두 자기관리하에 두려는 고집센 사람들. ②악성질병에 걸렸다고 잔인하게 통보받고『너무 늦게 찾아오셨기때문에 어쩔도리가 없읍니다』라는 진단선언을 받은 환자들. ③신장이식 수술이 예정되어있는 분들로서 자신의 용태에 대하여 지나친 희망과 비현실적 평가를 들어만 오다가 갑자기 절망에 빠져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수동적 자살」을 하는 환자들.
④신체질환의 위기에 처해있으면서도 적절한 의학적, 정서적、그리고 정신적인 도움을 받지못하고 다만 격리의 고방치된 환자들.
사망예정 환자들중에서 위와같은 범주에 속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흔히 비종교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쓸데없이 고통만 받는다고 생각되는 몇주일 또 몇달을 그대로 흐느적거리며 살아가느니 보다 차라리 임종과정을 단축시키는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문)=때로 환자들이『가엾은 모험』(자살)을 하는 것은 죽음의 실제를 대면하기 위하여 하는 행위입니까?
(답)=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영원한 내일이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인생의 심각한 비극이나 손실을 한번도 직시해보지 못하고 삽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 한번도 깊은 생각에 잠겨본 적이 없읍니다. 이런 환자들이 자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급격한 비극에 직면하면 심각하고도 깊은좌절에 빠지거나 또는 치료와 상담과진료관리를 지극히 어렵게 만드는 극심한 부정의 단계속에서 피난처를 찾으려고 할수도있읍니다.
어떤 환자들은 또 일생을 두고 만사를 좌지우지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사망예정질환에 걸렸을 때에는자기가 만사를 제어할수 없게되었다고 느낍니다. 만사를 제마음대로 해 보겠다는 한가지 표현방식이 곧 자살을 생각하는것입니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간호원이나 의사가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이러한 것이 있읍니다. 즉 의료진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간에 미리 환자와 의논을 한다는 인상을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무슨 치료행위를 아침에 할것인가. 오후에 할것인가를 그 환자에게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이런식으로 매사에 선택권을 부여하여 그 환자로 하여금 자기가 아직도 만사를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합니다.
또 그의 가족은 미리 전화를 하여 어느 특정한 시간에 환자를 만날수있는지 물어보게 합니다. 이런 태도는 환자에게 방문객을 맞이하는 문제가 순전히 자기권한에 맡겨져있다는 느낌을 갖게합니다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조금씩 조정함으로써 환자들의 용태가 빠른 시일내에 호전되는 일이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한한 환자가 많은 결정을 내리면서 살도록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문)=사망예정환자가 자살한 예를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그런 경우를 어떻게 다루었읍니까?
(답)=사망예정환자가 자살할 궁리를하고 또 나에게 그 문제로 의논한다면 나는 그 환자의 현재 상태에서 무엇이 생명의 지속을 참을 수없으리만큼 괴롭게하는가를 묻겠읍니다. 만약 신체적인 고통때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환자를 편하게 해줄수 있는 진통제를 바꾸어 쓸수 있읍니다. 만약 환자의 가족들이 그를 방치해 버렸던 때문이라면 우리는 그 가족을 불러서 다시 불러올 수가 없는 경우에는 우리가 환자를 자주 방문함으로써 가족이 할일을 대행합니다. 혹은 임종환자를 잘돌보도록 훈련받은 자원봉사자로 하여금 돕게합니다.
인간적으로 가능한 모든일을 다해사 우리는 환자로 하여금 자살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지난 여러해동안 우리들은 환자의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요구를 돌보아 왔읍니다만 그중에서 오직 한 건의 자살을 보았을 뿐입니다. 만약 어떤 병동에서 여러건의 자살사건이 일어난다면 의료진은 마땅히 환자간호나 병원운영방법을 재검토 재평가해 보아야 합니다.
(문)=사망예정환자 자살은 당연한 권리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답)=자살이 마치 중병환자의 권리인양 광고해서는 안됩니다. 프랑스 역사를 보면 한때 자살이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던때가 있읍니다. 어떤 보건소에 가면 자살하고자하는사람에게 독약을 주었었다는것입니다. 나는 안락사를 받대합니다. 또 중환자를 받대합니다. 또 중환자를 자살하게끔 돕는시설도 인정하지않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언제나 환자가 자기생명을 보호하도록 환자를 돕는 일이어야 합니다.
만약 의학적 소생의 가능성을 상실한 사망예정환자가 단지 약을 먹지않거나 더이상의 치료를 거부함으로써 자살을 생각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 환자에게 그럴만한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나의 이같은 발언에는 엄격한 판단과 구분의식이 내포되어있음을 분명히 연장시키는 행위를 거절하면서 죽음을 생각하는것과 한편으로 자기자신의 목숨을 정말 절단하는일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별개의 상황임을 알아야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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