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앞서 말한「사건의 핵심」의 주인공 스코비는 자살하기 전 약을 사들고 오다가 성당에 들어가『오 주여! 살아있는 한 저는 그들 중 어느 한쪽도 버릴 수가 없습니다만 죽어서 그들의 피의 흐름속에서 저를 멀리할 수는 있읍니다. 그들은 저때문에 병들고 있읍니다. 저는 죽음으로써 그들을 고쳐줄 수 있읍니다. (중략)주여! 날이면 날마다 당신에게도 이이상 모욕을 드릴 수는 없읍니다. 그렇게는 도저히 못하겠읍니다. 당신도 저를 영원히 잃어버리시면 훨씬 더 편하게 되실 겁니다. 제가 당신의 손이 안 닿는 곳(지옥ㆍ필자註)으로 사라져 내리면 당신도 평안을 얻으실 겁니다』라는 엄청난 독백인지 기도인지 분간도 안 되는 마음속의 절규를 꺼내놓는다. 그 애절함이야 어떻든 간음을 범하고 고백성사도 보지 않고 모령성체를 하고 자살이라는 신학적으로 보면 제일 큰 절망의 죄를 번한 그가 구원받았으리라고는 도저히 일반적 교리의 세계에서는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마무장면에서 랭크라는 신부의 입을 빌어 스코비의 부인 루이즈에게『부인, 당신이나 내가 하느님의 은총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중략) 교회는 모든 규칙 (교리-필자註)은 다 잘 알고 있읍니다만 단 한사람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전혀 모르는 법입니다. (중략) 이런 말을 하면 이상스럽게 들릴는지도 모르지만, 더우기 그런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 사람(스코비-필자 註)은 정녕 주님을 사랑하였읍니다』라고 술회시키는 것이다.
이리하여 20세기 가톨릭문학의 대논쟁이 벌어졌으니 즉『스코비는 永罰을 받았겠는가? 구원을 받았겠는가?』가 그 시비의 촛점으로서 대체적으로 신학자들은『천주께서 각자의 운명에 간직하고 계신 섭리에 부당하게 간섭해서도 안 된다』고 비난하고『저 진실한 고뇌 속에서 남보다 자기의 멸망을 결행한 그의 死後에 천주께서 안식을 드리워 주시라고 믿는 것이 왜 나쁘냐』면서 이를 변호하고 있다.
여하간 여기에 이르러면 그리인은 앞서「권력과 영광」에서 연민이 지니고 있는 빛(明)의 면、즉 희망보다도 어둠(暗)의 면을, 즉 고통이나 비극적인 면을 여지없이 그려놓고 있다.
끝으로「사랑의 종말」은 소설가인 벤드릭스(이 소설의 1인칭話者)는 고위관리인 친구 헨리 마일즈의 아내 사라와 절망적이라고 할 만큼 지독한 不倫의 사랑에 빠진다.
심지어 그들은 남편 헨리가 앓아누워있는 바로 옆방에서까지 정욕의 불을 태웠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밤 독일군의 폭격으로 그들이 치정을 저지르던 건물이 무너지며 벤드릭스가 그 기둥과 벽돌 밑에 깔려버린다. 이때 사라는 그 순간 그가 죽는 것이라고 여기고 신자도 아니면서 그대로 꿇어앉아 믿지도 않던 신에게 기도를 올린다. 즉 이 사람만 살려주시면 앞으로 그와의 관계를 끊어버리겠노라고 맹세까지 한다. 그런데 벤드릭스가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사라는 이것을 하느님이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사라는 신에게 한 맹세와 벤드릭스에 대한 정욕사이에서 처절한 고민을 한다. 그러나 마침내는 신에게 바친 맹세를 따라서 벤드릭스에 대한 사랑을 승화시켜 보다 높은 신에의 사랑으로 변용시킨다는 줄거리다.
결국 단적으로 그 주제를 분석하면 선은 악을 통해、사랑은 미움을 통해、구원은 죄를 통해서야만 도달되며 그 과정에는 거기에 비례하는 불안과 고통을 거쳐야하고 이를 견디어 이겨야 획득된다는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그리인은 저렇듯 인간심연(深淵)의 죄나 악을 마치 비호나 하듯 그리고 있는가? 또 어째서 그것을 마치 신에게서 은총을 끌어내고 신에게 도달하는 사다리로 삼는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역시 금세기의 위대한 또 하나의 가톨릭작가인 프랑소와 모리악의『작가는 죄에 더렵혀진 인간성을 파헤쳐 놓아야겠지만 그 안에 깃들인 악의 저쪽에서 우리 크리스찬들이 확신하고있는 또하나의 사실이 실재한다
그것은 즉 또 하나의 빛이 작가의 불안한 눈앞에서 그 죄를 淨化하고 聖化한다는 사실이다. 작가는 이빛의 증인이 되어야한다』라는 말이 해답이 될 것이며 또 성 바오로 사도의『죄가 많은 것에는 은총을 풍성하게 내렸읍니다. (로마서5장20절)』라는 말씀이 이를 뒷받침해 줄 것이다.
◇그레이엄 그리인
▲양력=1904년 런던 버어컴스테드에서 부친이 사립학교 교장인 상류가정에서 출생. 22년 옥스퍼드대학교에서 근세사전공. 26년 가톨릭으로 개종、최초의 소설「內部의 사나이」출판으로 호평을 받은 후 가톨릭사상을 바탕으로 한 작품 계속발표.
▲작품=브라이튼ㆍ로크(나영균 역ㆍ분도출판사 발행) 권력과 영광, 밀사(황찬호 역ㆍ을유문화사) 지하실外 16편 단편집 (황찬호 역ㆍ범조사) 인간의 심연(황찬호 역ㆍ삼성문화문고) 말없는 미국인(문일영 역ㆍ양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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