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
삶을 영위해가고 있다. 살아가고 있지않는 인간、삶과 아무런 관련이없는 인간을 우리는 생각조차 할수없다. 삶과 무관한 그러한 인간은 그이상 더 인간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말에 있어서「사람」이라는 말마디와「삶」이라는 말마디가 동일한 글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자체가 하나의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살기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게된다. 우리는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우선 살아남아야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우리인간의 관심은 줄기차게 삶에로 향해져있고 또한 그 삶에로 집중되어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삶자체를 위태롭게 한다거나 삶을 해칠수있는 모든것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또한 단호히 거부한다. 여기엔 한치의 양보도 없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위태롭게하고 위협하는것은 바로「죽음」이다. 죽음은 삶을 송두리째 파괴해버리고 결국 삶의 흔적조차 남겨두지않기 때문이다. 삶의 끝장 삶의 종말 그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사코 죽음과 투쟁한다. 모든것을 희생시키는 한이있다 할지라도 죽음 그것만은 막아내기 위해서 노력을 다한다.
그뿐아니라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흔히 죽음을 문제 삼는다거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조차도 꺼리고 싫어하게된다. 죽음을 문제삼는다거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는것 자체가 벌써 삶을 그늘지게하고 어둡게 만든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근본적으로 죽음이란 우리가 살고있는한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낯선 손님에 지나지않는다고 쉽게 판단해 버리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오로지 삶에만 열중하게된다. 다만 살아가는일에, 삶을 영위해나가는 일에 힘쓰게된다.
우리는 좀더 안락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삶을 좀더멋지게 꾸며나가기 위해서 이러한 것을 계획하고 또한 저러한 것을 설계하게된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나 여러 가지로 잡다한 계획과 설계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쫓기면서 삶을 영위해가고있다
그러나 우리인간이「죽음」의 문제를 아무리 외면해버린다 할지라도, 거부해버린다 할지라도 죽음은 그 스스로가 우리에게 문제를 던져온다. 우리가 그를 반기든 싫어하든 아랑곳 없이 우리를 찾아든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보도록 강요한다.
끝없이 살아갈수는 없다. 언젠가는 살기를 그쳐야하고, 살아가는것을 그만두어야한다. 왜냐하면 인간은「죽음에로의 존재」「죽을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죽음을 경험한다. 때로는 그러한 죽음에 대해서 듣기도 하고 또한 때로는 그러한 죽음을 직접 보기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그러한 죽음은 남의 죽음이다. 다른사람의 죽음이다. 따라서 그러한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을 직접 체험할수없다. 참된 죽음을 실감할수 없다
우리의 삶을 그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놓는 그러한 죽음을 체험할수 없다
나자신의모든 계획과 설계를 백지화 시켜버리고, 내삶을 통째로 앗아가는 그러한 절박한 죽음을 실감할수없다.
이와같이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안은 우리자신의 죽음 나 자신의죽음을 직접 경험할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그리고 우리가 예기하지못하는 시간에 죽음은 그 고개를 드는경우가 있다
그리고 죽음은 자기의 본모습을 흘깃보여주는 경우가있다. 그리고는 나를 그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들어버리고 절망의 심연으로 이끌고 가는 그러한 경우가 때때로 있다.
다른한편 우리가 마음속 깊이 아끼고 좋아했던 사람의 죽음을 지켜볼때우리는 죽음을 실감할수있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마치 나자신의 죽음과같은 그러한 죽음을 체험할수있다.
우리가 정말 마음속으로부터 아끼던 사람이 숨을 몰아쉬면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죽음과 싸우고있는 장면을 목격할때 이 죽음은 나와 무관한 어떤 객관적인 죽음일수는없다. 나는 이 죽음을 마치 나자신의 죽음과 다름없이 실감하게된다. 이순간에 나는 지금까지 단순히 막연하게 생각했던 죽음 그것이 갑자기 내 앞에 다가와있는것을 느낀다. 그리고 이순간에 이렇게 엄청나게 절박한 죽음의 문제를 지금까지 가볍게 지나쳐 버릴 수 있었던 자기 자신이 신기하게까지 느껴진다.
죽음은 이제 어두운 심연으로 드러나게된다. 죽음은 이제 우리가 그속을 꿰뚫어볼수있는 무엇이아니라 바로 우리가 그앞에서 숙연해지고 침묵할 수 밖에 없는 무엇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말없이 그것을 승복할 수 밖에 없는 무엇으로 나타나게된다.
우리가 죽음을 눈앞에 들때, 다름아닌 바로 나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둘때 우리의 삶이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게마련이다. 우리의 삶이 진지하다는 사실이 환히 드러나게 마련이다. 만일 우리가 끝없이 살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할일을 따로 발견할수 없게되고만다. 따라서 지금 내가 할일은 아마도 심심풀이나 놀이를 즐기는것 이외에 따로 할일이 없어지고 말것이다.
죽음을 직시할때 우리는 비로소 삶에 있어서 무엇이 근본적인것이며 또한 무엇이 부수적인것인지 구별해 낼수있게된다.
무엇이 가장 값진것이며 또한 무엇이 값없는것인지 판별해낼 수 있게된다. 무엇이 가장 의미있는것이며 또한 무엇이 무의미한것인지 확실히 밝혀낼수 있게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살아가면서 삶을 영위해가면서 여러가지로 잡다한 계획과 설계중에서 부수적인것을 제쳐두고 근본적인것에 힘쓸수있게 된다. 값없는것을 제쳐두고 값진것을 무의미한것을 버리고 의미있는것을 택할수있게된다. 이리하여 죽음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이렇게 볼때 우리인간은 죽음을 통해서 비로서 삶에 성실해지고 진지해질수 있다 하겠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